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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바보의 삶(마태복음 16장 21~28절)

<바보의 삶>

마태복음 1621- 28절 말씀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교회에서 여신도회가 김장을 담글 때 같이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김장할 때면 티비보면서 놀고 있다가 김치먹어보라고 부르면 달려가서 김장김치만 얻어먹곤 했는데.. 직접 하려고 하니까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김장을 하려면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절인배추셋팅하는 일, 양념만드는일, 양념무치는 일, 김치나르는 일 뭐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일을 잘했는지 모릅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딱 성경말씀이 떠오르더라구요. 로마서 828절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김장뿐만이 아니라 주의 일을 할 때 이 말씀처럼 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 자화상 아래의 제목을 보면 이렇게 써있습니다. 바보야그 자화상의 제목이 바로 바보야입니다.

파스텔로 얼굴 윤관만 그린 단순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제목을 바보야라고 붙였을까요? 알다시피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계에서도 큰 어른이시고, 추기경으로서 천주교계에서도 고위 성직자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고,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힘쓰신 분입니다. 그렇게 위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으신 분이 왜 바보야라는 제목의 자화상을 그렸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김수환 추기경의 말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났으면 뭘 그리 크게 잘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안다고 나대고, 어디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니 내가 제일 바보처럼 살았는지도 몰라요.”

김수환 추기경은 40년 전에 추기경으로 임명되었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의 취임을 축하하는 성대한 모임이 열렸고, 여러 사람이 열렬히 그를 칭송하는 축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입을 연 그의 말은 천만뜻밖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를 칭찬해 주셨지만 나는 잘못이 많은 사람입니다. 겉모습은 깨끗한 듯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드러난다면 여러분은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쫓아낼 것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고, 잘나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한 꺼풀 벗기면 어두운 부분을 갖고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누구도 탐욕과 이기심, 거짓됨, 어리석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어리석음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바보인 셈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이러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보여주기 싫어합니다. 누구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높은 지위에 앉고 싶고, 누구나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목소리 크게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합니다.

남들의 인정을 바라면서 자신은 바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잘난 체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완벽한 체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생긴대로, 모자라는대로, 형편대로 살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바보는 부족하다고 투정부리거나 짜증내지 않고, 그냥 웃습니다. 남들 눈을 신경써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참으로 솔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바보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에서 자유하며 자신의 결점에 대해 너그러워집니다. 어차피 자신의 결점을, 부족한 점을 알기 때문에 남들의 비난에도 그렇게 휘둘리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방어할 필요도 없고 남이 무시해도 그렇게 크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넘어져 있는 사람은 넘어질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미 넘어져 있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바로 전에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 천국열쇠를 주겠노라~”하고 축복하십니다. 그 다음에 읽은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이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립니다. 아니 예수님이 못가게 막습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오히려 항변하면서 말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은 이제 천국열쇠를 주겠다며 축복을 하던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고 저주의 말을 합니다. 오히려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꾸짖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당시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자라고 예언자라고 따르며 최고의 인기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도 베풀구요, 수많은 병자들을 순식간에 고치는 놀라운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이들 곁에는 항상 시기하는 무리가 있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본거지가 어디냐하면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면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는 거기 가면 예수님이 죽을 것을 뻔히 알았기 때문에 거기로 가시면 안된다고 막았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죽는다는 것을 예수님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그 죽음의 길을 가려고 했을까요? 참 바보 같지 않습니까? 뻔히 거기가면 매맞고, 죽을 걸 알면서 여러분이라면 그 길을 가겠습니까?? 저라도 안갔을 것입니다. 아니 거기 가봤자 좋을 거 하나 없는데 왜 거길 가겠습니까?? 지금 있는 곳에서 편하게 살면 되지..

하지만 예수님은 참 바보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죽음의 길을 아시고도 택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를 지셨고, 채찍에 맞으셨고, 죽으셨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지금 여기 이 곳에 앉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바보 같은 삶..

아픔과 고통이 있는 삶을 사시고, 그렇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하면서도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바보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바보 같은 삶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초대교회 많은 사람들은 부활의 축복을 누리며, 죄에서 해방을 얻었고,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숨쉴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이익과 편함만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 혼자만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옆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도리어 비난하고 욕하고 있진 않습니까?

참 이기적인 사회입니다.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한 사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연보다 경제가 더 우선시 되는 사회, 진정한 사람보다 체면과 얼굴이 더 중요시 여겨지는 사회.

이런 사회 속에서 희생과 섬김과 나눔은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참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 자신이 원하는대로 다 하고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많이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세상사는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더라구요. 내 뜻대로 되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살다보니 뭐든 잘해야 되고,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 잘해야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1등이 아니면 최고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 더라구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진정 행복합니까?? 진정 행복하고 싶다면, 바보처럼 사십시오. 바보처럼 산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희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남을 위해 사는거에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길 가에 떨어진 하찮은 쓰레기 하나를 줍는 일일지언정 남이 줍지 않는, 남이 버려둔 그 쓰레기를 줍는 겁니다.

남도 안하는데 내가 그 일을 왜해?? 하는 그 일을 하십시오!! 자신을 더욱 낮추고,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아야지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섬기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참 생명과 구원이 있습니다. 바보같은 삶!! 결코 아무나 살지 못하는 삶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라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섬기는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살 때 우리 주님께 인정받고 사랑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