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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역대하 18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역대하 181 - 11절 말씀

여호사밧은 큰 영예와 부귀를 얻었고, 북 이스라엘 아합왕과 혼인의 유대를 맺었습니다.

아람지역의 길르앗 라못은 요단강 동편의 산악지형입니다. 공격해 올라가기에 힘든 지역입니다. 지형상 위에서 방어하기 쉽지만, 아래에서는 공격해 올라가려면 몇 배의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틈만 나면 아람 군대가 내려와 북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아합은 남 유다 여호사밧과 함께 그 곳을 점령해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 역시 다릅니다. 아합의 제안에 어떻게 대처하는 지 말씀을 통해 보겠습니다. 3~4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겟느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여호사밧은 당신과 함께 싸우겠지만, 거기에 우선 순위의 조건을 겁니다.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보소서. 즉 아합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이 먼저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 가운데 어떠한 일을 할 때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사업을 할 때든, 일을 시작할 때든, 직장을 구할 때든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누가복음 119-10절 말씀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여호사밧은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쟁은 방어하는 것보다 공격하러 가는 게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라못을 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늘 익숙한 것은 잘하지만, 낯선 것을 하려면 힘든 것과 똑같습니다. 그 때야 말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할 때라는 것입니다.

사백명의 선지자는 모두 하나같이 길르앗 라못을 치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호사밧은 사백명의 선지자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함에 불구하고 혹시 이외에 다른 선지자가 있는 지 묻습니다.

아합 왕이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항상 자기에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흉한 일만 예언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말은 여호사밧이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라고 강한 어조로 말합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임금께서 예언자를 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아합 왕은 요즘 말로 하면 편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사람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그 사람 얘기만 나와도 싫어하고, 말투가 마음에 안들고, 성격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나 다 장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합왕이 그랬습니다. 그는 미가야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미가야는 항상 자신에게 안좋은 말만 한다고 단정짓습니다.

이렇게 단정 짓는 순간 미가야는 여호사밧에게도 안좋은 이미지로 남게 됩니다. 그 때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그런 말씀 마소서! 라고 강하게 이야기 합니다. 부정적인 시각이 아닌 편견에 의한 선입견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들으실 때 내 안에 있던 편견이 사라지시길 바랍니다. 누군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편견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상황을 말씀대로 보지 못합니다.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혹시 티비 프로그램 중에 시월드라고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나눠서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대변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입니다. 연예인들과 실제 시어머니, 며느리가 나와서 하는데요. 보면 신랄하게 서로의 행동과, 태도를 비난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자신의 마음 속에 상처 받았던 것을 다 이야기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받은 시집살이에 서러워 울기도 하고, 며느리에게 당한 분함을 토로 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시누이들이 거들고 나서면 더 가관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각자의 주장만 했지, 서로의 주장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계의 발전이 없고, 오히려 상처 위에 상처를 더 주는 것 같습니다.

아합왕과 미가야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위치였던 여호사밧은 인간관계를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

이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아합왕은 사돈 지간 이었던 여호사밧에게 함께 전쟁하자고 이야기하고, 선지자 미가야와의 인간적인 관계만을 중점적으로 생각했다면, 여호사밧은 아합왕과 미가야의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있음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아사왕도, 여호사밧도, 요셉도, 야곱도 그 인생이 형통함을 경험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예전에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전통과 율법에 의해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편견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을 잡아 가두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자, 인간관계를 넘어 하나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시작에 앞서 이 아침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먼저 구하십시오.

그러면 인간관계도 하나님께서 덤으로 해결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