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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마태복음 4장 17절 설교(복음의 시작 회개)

복음의 시작, 회개

마태복음 417

* <어바웃 타임> 영화이야기. 2013년에 개봉된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가 만든 영화로는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과 같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어바웃 타임을 보면, 많은 웃음과 감동을 주는데요. 특별히 시간에 관하여 생각하게 만듭니다. 주인공 팀은 이상한 집안 내력 덕분에 시간여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시간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여행을 통해 사랑을 이루고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시간여행을 하는 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 하루를 두 번 살아 보아라한 번은 늘상 살아온 것처럼 살고, 하루는 똑같은 일들 속에서도 더 웃고, 더 즐겁게 살아보라고 합니다. 주인공 팀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 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멋진 여행을 만끽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리는 팀처럼 시간여행을 할 수 없기에 오늘 이 시간이 마지막입니다. 우리에게 은혜주신 하나님께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릴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하나님 말씀은, 회개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회개는 그리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

죽음 없이 부활이 없듯이, 회개 없이 새로운 삶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이처럼 중요하기에 세례 요한의 첫 번째 외침(3: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역시 그랬습니다.(2:38)

회개는 첫 단추입니다.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복음의 시작, 회개로 잡아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부흥회가 참 많았습니다. 교회에서 절기별로 하기도 하고, 이웃교회나 큰 교회에서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오시면, 우루루 몰려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요즘 예배시간이 1시간만 넘어가도 사람들이 못견뎌 합니다만, 그 때 당시에 부흥회를 하고 기도를 하면 보통 2~3시간은 기본입니다. 그 차가운 마룻바닥에 맨발로 앉아서 무릎 꿇고 주여~ 주여~ 하는데 가끔은 집사님들이 실신해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방언이 터지고, 어떤 분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부흥회가 끝나고 나서의 특징은 제가 기억하기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회개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대성 통곡하고, 죄사함을 구하고, 은혜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그렇게 드세고, 고집 쎄 보이던 분들도 부흥회가 끝나고 나면,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무섭고, 성질 사나웠던 그 집사님의 얼굴에 주름이 펴지고 근심이 사라지고, 예수님처럼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부흥회에서는 이러한 회개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에는 이러한 회개의 눈물이 말라 버린 것 같습니다. 회개의 기도가 없습니다.

매일 하는 기도가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녀들 앞날과 자신의 건강, 무언가를 구하는 기도이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현재 성도들의 기도의 문제점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신은 전혀 바뀔려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늘 하나님께 자신의 요구사항만을 늘어놓는 것이 오늘날의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 뜻에, 내 자신을 교정해가고, 변화시켜가고, 온전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도보다도, 자신의 욕심을 채워달라고 하는 기도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과 딜을 합니다. 하나님, 헌금 많이 냈으니까, 기도응답해주세요. 하나님 새벽기도 나왔으니까 기도응답해주세요. 하나님, 매주일 봉사했으니까,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회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회개란, 죄에 대하여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변화와 행동입니다.

쉽게 말하면 회개는 내 자아를 떠나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나의 죄와 나의 연약함과 나의 교만함을 깨닫고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마태복음 417절은 메타노에오의 2인칭 복수 명령형인 메타노에이테를 써서 우리에게 회개하라! 라고 강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메타노에오 동사형 : 이 뜻은 사람 마음을 고치다, 뉘우치다. 회개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서도 너무나 빈번하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반복하고,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면서도 이집트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직선거리로는 약 370km정도 됩니다. 하나님은 한달이면 갈 거리를 무려 40년 동안이나 광야 생활을 하게 만드십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회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제껏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고기를 찾고, 물을 찾던 그 이스라엘의 눈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기를 밥먹듯이 합니다. 하나님은 그 때 마다 사사들을 통해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사사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삼손, 입다, 많은 사사들을 계속해서 보내십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자기의 소견대로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닙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소견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바쁘면 한 주 쉬고.. 우리의 소견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 응답 안되면 원망하고, 인생이 뭐 꼬이면 하나님 나한테 왜그러시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왕정시대에 들어서도 다윗, 솔로몬왕 시대에도 회개를 촉구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지만, 솔로몬은 타락해서 나라가 두쪽 나고, 남북으로 나뉘게 됩니다.

성경을 읽다가 재미있는 것은 사무엘하 10장까지 다윗의 최고 전성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사무엘하 11장에서 밧세바를 통한 타락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최고 전성기는 열왕기상 10장까지입니다. 스바여왕이 찾아오고, 은금마병할 것 없이 솔로몬이 얼마나 잘 나갔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1장에서 솔로몬의 타락을 보여줍니다. 많은 이방여인들과 정략결혼을 하고, 우상숭배를 허용하며 타락하게 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다른 점은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철저히 회개했지만,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내용은 성경 기록에서 나와 있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요나를 들어 저 큰 성읍 니느웨를 회개 시키십니다. 수많은 선지자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등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회개 하라고 촉구하십니다.

그것도 안되서,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 예수님, 사도 베드로, 요한, 들을 통해서 마지막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에게도 철저히 회개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오늘까지도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그 말씀에 대한 반응이 없습니다. 참회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회개 안합니까?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가 죄고, 뭐가 의인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자료들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2세부터 해서 교육시키는 자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아이들과 같이 밖에 나갔다 오면, 보통 손을 씻으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대부분의 아이들은 손을 씻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왜 손을 씻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교육자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놀다가 들어온 아이들의 손이 있구요. 그리고 돋보기로 그 손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 그림이 나옵니다. 다음 장면에서는 돋보기로 보이는 손에 있는 더러운 세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은 자신의 손이 너무나 더럽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왜 씻어야 하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죄가 이와 같습니다. 눈으로는 안보입니다. 하지만 돋보기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여다보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가 득실득실 하는 지 모릅니다. 부지중에 지은 죄가 너무나 많습니다. 손에 있는 세균들을 보고 더럽다고 인정하고 물에 가서 씻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성령으로, 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는 것이 회개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보이는 반응이 있습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세례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이 처음 외치신 한 마디가, 회개하라입니다.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의 교만, 우리의 자아, 우리의 게으름, 우리의 차지도 덥지도 않은 뜻뜻미지근한 신앙, 처음사랑이 식어버린 신앙,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으로 변화가 없는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저부터가 변화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성경읽고, 기도하고 해도 이 인격이 변화되지를 않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세상을 더욱 닮아갑니다.

매 주일 말씀을 들어도 말씀 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처럼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막혀 말씀의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사데교회처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처럼 살아갑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렸습니다. 교회에 오기는 하지만, 변화된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회개입니다. 우리의 삶의 변화는 철저한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성령충만함을 받아서 용기를 내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복음을 증거하자, 사도행전 237절에서 이 말을 들은 이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우리가 어찌해야 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다같이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회개는 각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 스스로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회개하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결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의 죄악된 나를 끊어버립니다. 이전에 나약한 나 자신은 죽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첫째로, 회개하면 결단하게 됩니다. 깡패 김익두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유명한 부흥사가 된 일화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철저히 회개했는지 자신의 부고장을 마을 사람들에게 돌렸다고 합니다. 왜 죽지도 않은 사람이 부고장을 돌립니까? 예전에 김익두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은 회개하라고 하면, 눈물 조금 흘리고, 이제 조금 더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정도를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회개하라고 하면, 눈물 조금 흘리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좋다고 생각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그 직업을 과감히 포기해버렸습니다. 인격이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 만나고, 사흘밤낮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그 사흘 동안에 얼마나 예수님 앞에 회개했는지 사람이 완전히 돌변해서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회당에서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메섹 회당 뿐 만아니라, 온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 만나고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서 살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십시오. 회개하면 놀라운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전에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회개하게 되면 겸손해집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의 분깃을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립니다. 돈도 없고, 이제는 돼지를 치고,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는 신세가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율법에 나온대로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봅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손도 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둘째 아들은 얼마나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신앙이고 뭐고 다 버리고, 죄가운데 빠져 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탕자가 자신의 처지를 보고 깨닫습니다.

누가복음 1517-19절 말씀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예전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아들이었지만, 회개하고 스스로 돌이켜서 보니까 자신은 아들의 하나가 아니라 품꾼 중의 한 사람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하면 겸손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겸손해집니다.

<팡세>를 쓴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겸손하다면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회개에 의한 것입니다

겸손의 출발은 회개라는 말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참 많습니다. 회개하면 희생하게 됩니다. 회개하면 헌신하게 됩니다. 회개하면 순종하게 됩니다. 회개하면 사랑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회개하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돌아서는 것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Turn Around)

저 와 여러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회개 한다는 것은 예수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돛을 올리고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태풍이 불것입니다. 역풍이 불어서 멈춰서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 떠 있는 배처럼 외롭고, 무섭고,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도 없고, 잘 가고 있는지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저와 여러분을 보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방향으로 키를 돌리는 자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 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 아버지는 회개하는 자를 보고, 기쁨에 겨워 살진 송아지를 잡을 것입니다.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보다 앞서 그 회개의 길을 간 선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곱, 다윗, 베드로, 바울,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 마틴 루터, 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존 낙스, 길선주 장로 이 외에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 회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오지 않느냐? 부활은 없다. 이단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3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2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이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으로 우리가 회개케 하시는데 그것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