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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내가 순금과 같이(욥 23장)

내가 순금과 같이

욥기 231 ~ 17

 

요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10)”.

 

욥의 마음 중심에는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받은 재앙이 무겁고 컸는지 탄식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욥에게 임한 재앙을 마주할 때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앞에도 뒤에도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계시지 않아 만나뵐 수 조차 없는 처절한 상황입니다.

뭐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길이 없어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욥의 심정이 이랬습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하게 깨닫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할수 없는데도 한다고 하고, 할 수 있는데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벗어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욥이 어떻게 반응한 지를 눈여겨 보십시오.

어찌할 수 없다고... 1절부터 9절까지 이야기해요.

10절에서 첫 마디가.. But 그러나..입니다. 여기서 욥의 믿음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성경이야기가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반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그러나... 가 있습니다.

룻이 나오미와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외국 모압에 가서 남편과 두 아들도 잃고, 마라와 같이 쓴 인생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룻과 나오미가 도착한 그 때는 베들레헴에 보리 추수할 때였습니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 섭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거인 골리앗을 무찔러 버럽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말이 공공연한 시대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대제사장들은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는 핍박자였습니다. 교만했고, 남녀노소 잡아가두는 것을 볼 때 무지막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자 온 세계를 뒤집어놓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러나 가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지라도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계십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러나 우리에게는 반전의 때가 반드시 옵니다.

죽음이 우리를 둘러쌀지라도 그러나.. 우리는 부활의 산 소망이 있습니다.

 

욥은 이 그러나를 고백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고통속에서, 그가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의 앞 길을 아실 줄 믿습니다. 지금 당장은 패배한 것 같고, 지금 당장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고, 고통의 길일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시켜주시고, 성숙시켜주시고, 연단시키셔서 우리가 순금 100%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줄 믿습니다.

 

14~17절 말씀을 보십시요.

욥은 처음에 고난으로 인해 반항하는 마음.. 근심하는 마음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하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늘 깨닫고 의식한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경건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러한 복된 날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