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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시편 3편)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시편 31~ 8

시편은 영혼의 책이요, 찬양이요, 노래요, 시입니다. 그냥 한 번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니라,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할 책이 시편입니다.

시편은 150편이 있지만, 권수로는 5권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학자들은 모세가 지은 모세오경(,,,,)을 따라서 권위를 가지고 시편을 구분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오늘 시편 3편에 위에 써있는 것처럼. 150개 중에 116개만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116개 중에 73개만 다윗의 시라고 명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을 보다 보면, 셀라 라는 문구가 뒤에 따라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각 연을 구분해주는 말이기도 하며, 동시에 침묵가운데 말씀을 묵상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장의 쉼표처럼 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1,2절 말씀의 분위기와 3,4절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그 중간에는 셀라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러한 셀라가 필요합니다. 잠시 쉬어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말을 하다가도 잠시 침묵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 일로 바쁘게 일하다가도 앉아서 쉬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셀라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다시금 미래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전환점이 셀라입니다. 오늘 이시간이 셀라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인생에서의 전환점, 지금껏 하향 곡선을 그렸다면 다시 상승 곡선으로 올라가는 전환점, 지금까지 나 위주의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회개가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셀라는 멈춤입니다. 걱정도 멈추고, 근심도 멈추고, 염려도 멈추는 것입니다. 이 순간 만큼은 하나님을 향해 나의 시간과 영혼을 비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시편 31,2절은 대적도 많고, 원수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조롱합니다. 하지만, 셀라 이후에 3절에서 시인은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위기에서 믿음의 선포로 갑작스럽게 바뀝니다. 그 사이에는 셀라가 있었습니다. 혹시 영적인 침체에 빠지시고, 신앙생활을 해도 기쁨이 없고,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신 분들이 있습니까?! 지금 셀라가 필요할 때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쉼을 통해 다시 회복하시고, 다윗처럼 믿음의 선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다윗은 사무엘하 15장 이하에 나와 있는 대로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황급히 왕궁과 수도 예루살렘을 피해갔을 때 그는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갔다고 할 만큼 생명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렇게 왕궁을 나온 다윗은 그날 밤을 요단강 가 바후림에서 보냈습니다. 밤 사이에 추격병이 따라와서 찾았지만 다윗은 그 수난의 밤을 무사히 넘기게 되어 새 아침을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대적이 많고이 시인을 치는 자가 많기 때문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은 문자 그대로 위기 투성이 였습니다. 완전히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상태에 빠졌습니다. 6절 말씀대로 천만인이 저를 둘러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그 위험한 환경과 순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의 손이 있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 넘치는 것은 위기에 대한 간증이 아니고 그 모든 위기에서도 보호하고 지켜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증으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믿음의 선포에서 일상 전체로 고백되어지는데 5절에서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하나님이 그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우리는 어떤 위험한 순간이라도 무사히 보낼 수 있습니다. 참된 안전은 물량적인 것에서나 군사적인 방비에서 오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온다는 그 신앙이 시 전체를 통해 고백되어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자고 깨고 하는 이 평범한 사실에서 나를 지키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랄프 에머슨이란 사람은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평범하게 잠을 자고 있습니까? 감사하십시오. 어제 잠을 자고 오늘 아침에 평안하게 일어나셨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신앙이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왜 압살롬이 반역했습니까? 왜 압살롬이 암논을 죽였습니까? 왜 암논이 다말을 범했습니까?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그 죄악이 그 자식들에게 그대로 흘러간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맨발로 울며 도망갈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65-11절을 보면 사울의 족속 시므이라는 자가 황급히 도망치는 다윗을 저주합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시므이의 머리를 베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지만, 10-11절에서 다윗은 오히려 아비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시므이의 저주 또한 하나님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 신앙이 바로 다윗의 신앙입니다. 사람의 저주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신앙이 있다면, 관계의 문제, 상황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믿음이 있기에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다윗의 구원은 아들 압살롬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구원은 사울의 족속 시므이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이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흔들리지 마십시오. 세상에 가치관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었습니다. 우릴 향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고, 확신할 때 주님께서는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려주십니다.

다윗은 이러한 믿음으로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 천만인이 둘러치려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고,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주변의 사람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재물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의 눈을 의식하십시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측은히 여기시고, 눈물로 간구하시고, 우리를 품에 안아주시는 주님의 손을 바라보십시오. 그 때에야 우리는 다윗처럼 고백할 것입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우리의 자고 깨는 것, 우리의 생명도 그 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 교회에 편지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로다.”

다윗의 신앙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시와 노래가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쁘고 혼란 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셀라를 외치며 쉼을 누리게 하시고, 다시금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되게하옵소서. 오늘 이 아침이 믿음의 전환점이 되게 하시고, 늘 평범한 일상이지만, 새로운 믿음의 선포가 있게 하옵소서.

다윗이 눈에 보이는 사람,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에도 흔들리지 않은 것처럼, 오직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