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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나를 기억하소서 느헤미야(느헤미야 1장)

나를 기억하소서, 느헤미야

느헤미야 11~ 11

 

1) 유다 총독,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같은 학자 겸 선지자가 아니었다. 또 에스겔이나 다니엘처럼 재능 있는 선지자도 아니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평신도라 부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따르는 사람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고, 왕의 신임을 누리고 있었다. 왕이 먹고 마시기에 음식과 술이 안전한 지를 확인하는 것이 느헤미야의 일이었다. 또한 그는 왕궁의 경영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충성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어야 했는데, 느헤미야는 그런 자질들을 인정받고 있었다. 왕과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그는 개인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고대 근동 지역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왕궁들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정치적 음모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궁궐에서의 안락함을 뒤로한 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보수하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도록 느헤미야를 부르셨다. 느헤미야서는 경건한 지도자들을 위한 훈련 안내서다. 왜냐하면 느헤미야와 그를 따르는 일꾼들은 52일만에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일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느헤미야서에는 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20번 이상 사용되었고, 느헤미야가 했던 그 일을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해야할 가장 가치있고, 일이라고 생각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큰 부담을 안고 있는가?

느헤미야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도록 징병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자원했다. 그의 형제 하나니를 통해 들은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의 목전에서 모멸을 당하고 있고,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들은 불에 탔으며 시온성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며 수일 동안 슬퍼했다. 그는 왕궁에서 안락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동족들의 곤격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슬피 울었다. 그는 그건 그 사람들의 잘못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 사람들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또는 다음에 갈 때 내게 미리 알려주면 돈이나 옷가지들을 좀 보내도록 하지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길 바라실 때는 보통 우리 마음에 부담을 주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신다.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마음의 부담이 복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크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1:5)라고 부르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의 첫 번째 기도를 시작했다. 느헤미야서에는 기도가 열두차례 기록되어 있다. 기도하면서 느헤미야와 다른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9:32)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느헤미야는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했다. 바사의 왕 앞에 아뢰기 전에도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다. 왜냐하면 왕보다 더 크신 이가 하나님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현재의 안락함을 뒤로한 채 어려운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빛은 밝은데서는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정말 어두운 곳에 가면 작은 반딧불이도 그 빛을 발하는 것을 보게 된다.

큰 문제와 장애에 가로막혀 있는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누군가는 문제목표에서 눈을 뗄 때 보게 되는 난처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보수함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도성이 안전하게 되는 목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닥친 첫 번째 문제는 기존의 사람들과의 차이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미 귀환하고 있던 사람들, 끌려가지 않고 남아있던 사람들, 성벽과 성문 없이도 생활하고 있고, 이미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과 자신과의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내적인 문제, 다시금 성벽을 세우고자하는 동기를 일으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하나님은 느헤미야가 뜻을 세우고 복구계획을 제시하자 그에게 하나님을 위해 함께 일할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다.

두 번째 문제로는 이스라엘 밖에서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나타난 것이다. 산발랏과 도비야외 게셈은 유대인들이 복구 활동을 하는 것은 왕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기도하면서 일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나 그 세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을 가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무장시켜 성문을 지키게 했다. 한 손에는 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했다.

문제는 늘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원수들의 외적인 공격이 조용하자 이번에는 또 내적인 문제가 생겨났다. 일꾼들 가운데 낙심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고, 가난한 유대인들이 도움을 청했다. 빈부의 격차로 인한 갈등이 있었고, 기근이 시작되어 먹고 사는 문제도 녹록치 않았다. 느헤미야는 그러한 문제들도 기도하면서 정면돌파했다. 부자들을 혼내고, 동족들을 착취한 것을 돌려주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것을 먼저 내어 놓았다. 그리고 또한 큰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유대인 남자들의 문제였다. 그 문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단 칼에 해결하기에는 너무 출혈이 컸다. 하지만 문제가 없다면 진전도 없다. 마찰이 없다면 동의도 없다. 사탄은 결코 죽은 자를 공격하지 않는다.

큰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가?

느헤미야는 사람들과 함께 밤낮으로 일했고, 그 어떤 총독이라는 특권도 취하지 않았다. 총독에게 할당된 음식을 먹는 대신 그는 음식값을 지불했고, 자신의 식탁에서 150명의 사람들을 먹게 했다. 진정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먼저 희생하고 그 희생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범을 보일 뿐이다.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그 말씀을 입증하셨다.

느헤미야서는 큰 환란으로 시작하지만 큰 기쁨으로 끝이 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크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52일만에 성벽재건 작업을 마칠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예루살렘이 처한 곤경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큰 마음의 부담을 느꼈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라.

마음에 부담을 느낄 때 그 부담을 하나님께 알리라. 하나님이 어쩌면 당신의 삶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그 부담을 복으로 바꾸시려고 계획하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