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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구원의 왕으로 오시는 분

구원의 왕으로 오시는 분

찬송가 364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말씀 교독 스가랴 9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땅에 공의를 베풀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펼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 아스글론과 가사, 아스돗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 이방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는 것을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3~4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도다 /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우리 스스로의 벽을 쌓고, 자기 방어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누가 굶어죽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두로에서 은과 금을 거리의 흙처럼 쌓아놓았듯이 우리도 재물을 그처럼 쌓아두고 사는 것이죠. 누구를 위해서요?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러한 두로를 완전히 정복하시고, 그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신다고 하십니다. 해상 무역으로 돈을 벌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그 곳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요.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뿐입니다. 죽으면 금과 은 어느것 하나 갖고 가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예루살렘에 임하시는 구원의 왕 : 예수 그리스도

9절부터 17절까지는 구원을 베풀 왕에 대한 예언입니다. 누구를 예언하는 말씀입니까?

우리 9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베푸는 내용은 10절에 보면 전쟁이 아닌 화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땅 끝까지 이른다고 말합니다. 11절에서는 갇힌 자가 소망을 품고 하나님이 지키시는 요새로 돌아오게 하시고 갑절의 축복과 은혜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16-17절 말씀을 보면, 얼마나 그 구원이 아름다운지,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양떼를 돌보시는 선한 목자가 되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재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께서 2000년전에 이 땅에 오셔서 주의 구원사역을 이루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산 증인이 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대망하면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스가랴에 나오는 그 시대는 기뻐할 상황도 아닙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그 분, 구원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나귀새끼를 타고 오실 겸손의 왕을 생각해볼 때 그들은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9절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이러한 선포는 주님 오심을 바라볼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계시고, 무거운 멍에를 매어 힘겹게 사시는 분이 계시다면, 우리 주님을 바라보시면서, 기쁨을 선포하고, 즐거이 찬송할 수 있는 그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