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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갈라디아서 3장 23~29절 설교

* 성경봉독 : 갈라디아서 323-29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나니

신앙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초등교사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24~25)

옛날에 한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거지는 나면서부터 거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다리 밑에서 비참하게 살면서 20여년을 동냥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임금님이 친히 행차하여 그 다리 밑에 오더니 그 거지를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거지는 곧 궁으로 옮겨졌고, 목욕하고, 이발하고, 좋은 옷을 갈아입고, 좋은 방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거지는 여전히 태생이 거지였기에 손으로 음식을 먹으려 들었고, 침대보다는 바닥에서 아무렇게나 뒹굴며 자는 것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예절도 모르고, 말투도 여전히 천박했습니다. 옷은 왕자 옷을 입고 신분은 거지에서 왕자로 바뀌었으나 그의 행동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거지가 왕자다워지기 위해서는 그가 거지로 살았던 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의 변화는 뿌리 깊은 그의 거지로서의 삶만큼이나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이루어져 갔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를 왕궁에 데려다 놓은들 얼마나 빨리 해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이 세상의 자녀처럼 행동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분이 변화되었다고 해도 행동까지 변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단계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갈라디아서를 쓴 바울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앙에는 시간과 단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가 누구나 있습니다. 모태신앙이든, 중간에 교회에 오게 된 사람이든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교회 생활과 성도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적응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교회에 남기도 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교회에 어느 정도 잘 적응하고 주일 예배에 잘 나오면, 이제 양육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새가족교육, 성경공부를 통해서, 반드시 하나님에 관해서 배워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관해서 배워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은 눈치로 배울 수 있습니다. 다들 눈감고 기도하는데 나만 눈뜨고 기도하면 이상하잖아요. 눈치봐서 얼른 눈감고 기도합니다. 헌금 다 내는데 나만 안내면 이상하니까 헌금도 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은 계속해서 듣고 배워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보고, 내 입술로 고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데 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믿음의 기초가 쌓이면 이제 해야하는 것이 봉사와 섬김입니다. 머리로만 아는데서 손과 발로 뛰는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봉사와 섬김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고 자기의 신앙생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세워가는데 까지 이르게 됩니다. 자기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훈련을 합니다. 사랑받아본 사람만이 사랑할 줄 압니다. 마찬가지로 섬겨본 사람만이 섬길 줄 압니다. 순장 중에 정말 잘 섬기는 순장님이 계시면, 순원들도 똑같이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대로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양육과 섬김의 단계를 넘어서면 전도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영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봉사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고를 겪은 임산부처럼 한 생명을 위해 힘을 쏟게 되고, 새생명을 낳는 데까지 이릅니다.

~! 그럼 전도해서 교회에 데려왔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 데려다놓으면 끝입니까?

아닙니다. 이제 전도한 영혼을 예수님의 제자삼는 제자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전에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제는 가르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에서 교사로 나아가는 것이고, 성경대로 하면 제자에서 사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단계입니다.

<새가족 교회적응기 양육 섬김과 봉사 전도(영적재생산) - 제자훈련>

오늘 말씀 갈라디아서 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쉽게 말하면 초등교사인 율법 아래에 있는 단계에 있었다면,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초등교사 수준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중학생이 초등학생 노릇하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신앙에도 단계가 있는 것이고 수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직분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성도에서 집사되고 권사되고 장로되고 뭐 이렇게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다 성도입니다. 저도 성도고, 여러분도 성도입니다. 직분에는 물론 권위가 있지만, 교회 안에서의 역할분담과 질서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기도할 사람, 봉사할 사람, 가르칠 사람을 구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역할을 합니다. 상하의 구분이 아니라 다른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초신자에게 중요한 직분을 맡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칫해서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도 직분도 어느 정도의 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단계에 속해 있습니까?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봉사와 섬김을 통해 예수님 닮아가고, 한 생명을 살리는 전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도가 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나니(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여기 혹시 유대인있습니까? 아브라함의 피가 섞여 있는 분이 있습니까? 혹시 중동 이스라엘에서 온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할 수 있습니까? 서로 닮은데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얼마나 다들 개성이 강한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믿음입니다.

흔히 갈라디아서를 로마서의 요약본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14~17절에 보면 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한 번 찾아서 같이 읽겠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 삼아주셨으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고, 아무런 공로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택하여 불러주시고, 아들로 삼아주셨다는 말입니다.

산돌 손양원 목사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자신의 장자와 차자를 죽인 공산당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 장례식에서 한 10가지 감사기도.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3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으니,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6.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10.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그 공산당을 양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원수를 자신의 아들로 삼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렇게 양자로 삼아주셨습니다. 죄의 종노릇하고, 율법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이 일에 증인되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게 하신 이가 성령님입니다. 믿는 자들의 외적인 표지는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우리가 누리는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축복,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축복, 주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축복,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축복, 신분의 변화의 축복, 버린 돌에서 모통이돌이 되는 축복, 쓸모없는 자에서 쓸모있는 자가 되는 축복,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축복... 뭐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양자삼아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아들로서 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2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의 연합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작은 예수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초등교사를 떠나 이제 어엿한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것 받기만 했다면, 이제는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은혜만을 누리면 살기보다는 이제는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고, 책임감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않고, 스스로 심은대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종 노릇해야 합니다. 육체의 일을 음행과 더러운 일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것을 과감하게 청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살아야하고, 인생의 아름답게 결실해야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삶 가운데 얼마나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구원의 기쁨이 여러분의 삶가운데 넘치고 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샬롬의 평강이 있습니까? 얼마나 주님을 위해 오래 참고 인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보다 더 어렵고 못살고 불쌍한 이들을 향한 자비의 마음이 있습니까? 어려운 이들에게 얼마나 선을 행하고 유익을 끼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정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충성하고 있습니까? 모세처럼 온유하고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자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의 유혹 앞에 자신을 절제하고 있습니까?

과연 하나님 앞에 드릴 좋은 열매가 있습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좋은 나무인지 아닌지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열매가 없다면, 이제는 그 귀한 성령의 열매를 위해 이제 힘을 쏟을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생명을 살리는 전도에 힘을 쏟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시간과 생명을 투자해야 된다 이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오냐 오냐 하며 응석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컸으면 해야할 일들을 가르쳐야합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아끼고 절제하고 아름답게 선용해야할 지를 알려줘야 합니다. 황금만능주의의 세상에서 돈의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치 있게 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에 손을 놓고 있는 것, 방관하면 모른 척 하는 것도 믿는 자들에게는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자녀로 인해서 피눈물 흘릴 때가 닥칠지 모릅니다. 먹을 것만 갖다 준다고 해서 부모노릇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책임까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그것을 국가에서 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가정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 가정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양육수당이 처음 태어났을 때 24개월까지 20만원입니다. 그리고 이번 달부터 아동수당 10만원이 더 나옵니다. 30만원입니다. 물론 무시할 수없지만, 한 생명을 키우는데 드는 돈은 수억이 듭니다. 국가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오직 그 자녀를 낳은 부모가 사랑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다는 것을 알고 깨닫고, 그 은혜를 누린 자에게 하나님은 나를 따르라! 그리고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작은 예수로 살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