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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갈라디아서 1장 11~17절 설교 (아라비아로 간 바울)

설교제목 : 아라비아로 간 바울

 설교본문 : 갈라디아서 111-17

사도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 갔던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한 서신이 갈라디아서입니다. 하나의 도시가 아닌 넓은 한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한 것이고, 또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변증과 항변이 담겨 있고, 복음이 잘 요약되어 있는 로마서의 축약판이라고 볼 수 있는 서신서가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특징 중에 하나가 서두에 감사인사가 빠져있는 것이고, 하나의 도시가 아닌 넓은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넓게 보면, 우리 한국교회도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할 때를 보면, 복음전하다가 핍박받고, 죽을 뻔한 그 곳에 다시 가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상처받은 그 곳에 다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자기에게 죽일 듯 덤벼들던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만약 여러분을 무시하고 쫓아내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 그런 곳이 있다면, 다시 가겠습니까?? 말이라도 섞고 싶지 않고, 쳐다보기도 싫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곳에 다시 갑니다. 다시 죽으러 갑니다. 다시 복음 전하기 위해 갑니다. 다시 그 곳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다시 더베에서 발길을 돌려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향합니다. 바울이 복음 전도하는 중에, 선교여행하는 중에 중간 중간에 무엇을 했기에 이러한 굉장한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바로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1700년대 아메리카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란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굉장한 일을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주의 일을 감당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21세에 개종을 하고 24세에 헌신을 해서, 29세로 생애를 마쳤던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폐결핵을 비롯한 온갖 병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인디언 틈에서 온몸과 심혈을 쏟아버린 이름 없는 선교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불꽃같은 생애와 기도는 그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1740년대 미국의 대각성 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드의 심장에 깊은 감동을 끼쳤고,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마음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케리와 짐 엘리엇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여서 복음 사역에 종사하도록 했습니다. 그가 했던 가장 큰 사역은 기도였습니다. 그는 기도로 숨쉬웠고, 기도로 움직였으며, 기도로 선교하다가 기도 가운데 숨을 거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 속에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매순간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거룩해집니다. 기도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기도할 때 눈물이 나옵니다. 기도가 우리의 영혼을 살립니다.

1. 주님이 내 속에 나타나실 때(16) - 임재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체험한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다메섹 도상에서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9, 22, 26장에서 세 차례나 자신의 다메섹 체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공문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을 향해 가던 바울에게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계시해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93~9 같이 찾아서 읽겠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두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오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오늘 말씀으로 갈라디아서 15~16절로 돌아가서 보면,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바울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 바로 그 때의 바울의 상태는 망신창이였습니다.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손에 이끌려 가야 했습니다.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야 예수님을 가슴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때에야 예수님이 임재하십니다. 우리 자아가 살아 있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아무 걱정없이 살 때보다 바울처럼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 때가 찾아올 때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때는 바울이 눈멀어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살게 돼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게 돼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나타나실 때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나타나니까 사도 바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발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께 이끌려 살게 되고, 예수님께 붙들려 살게 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나타나시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악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거듭남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워져 버렸습니다. 인격과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그렇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생각이 달라지고 말에 힘이 있고, 행동에 생기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기 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주님을 모실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에이든 토저 목사님은 <임재체험>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가 관심의 변화이다. 땅에서 하늘로,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이생에서 영원으로, 세상의 부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로 관심이 바뀐다. 인생의 새로운 목적이 그의 전인격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새로운 인생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전에는 매력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전에 사랑했던 것들을 미워할 것이다. 이렇게 혁명적인 기독교를 회피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피하는 자이다. 십자가를 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세례와 교인 등록으로 자기를 합리화한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아무런 감동도 만족도 얻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인생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아라비아로 간 바울(17) - 훈련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전에는 늘 부모님과 의논했는데 사도 바울은 혈육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바울의 뜻은 다메섹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라비아였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바울은 갔습니다. 뜻을 정하면 가야 합니다. 그 곳에서 3년을 보내면서 무엇을 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대부분 광야생활을 3년 동안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단련되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연구해서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됨을 깨우쳤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은 3년의 시간 동안 허송세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연갑자보다도 열심과 열정이 있던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을 가지고 했을 것입니다. 3년 동안의 훈련과 연단의 시기가 있었기에 네 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바울처럼 훈련의 시간 광야교회에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세에게도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에서 세 가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이란 광야에서 믿음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숱한 고난 속에서 연단받았습니다. 야곱도 이스라엘이 되기까지 하란에서 20년을 거주하면서 연단받았습니다. 이미 이 광야의 시기가 찾아온 분도 있고, 앞으로 찾아올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의 시기를 통해 우리를 자라게 하시고, 성숙시켜주십니다.

사실, 광야의 시기를 지나본 사람만 그 고난과 고통을 압니다. 병든 사람만이 체험하고 누릴 수 있는 은혜의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험이 수많은 병자들의 마음을 깨닫게 합니다. 사람으로 인해 시험 들고 고통받아본 사람만이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으로 인해 물질로 인해 고통받아본 사람만이 돈과 물질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어떻게 보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늘 열심으로 살아온 바울이라면 그 곳에서도 철저히 훈련받고, 열심히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계속해서 자라가야 합니다. 훈련받아야 합니다. 성경공부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완성이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로 끝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훈련받고 연단 받아 이방인의 사도로 귀하게 쓰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쓰임 받는 주님의 사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3.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간 바울(17) - 다시 재도전하라!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실패한 그 곳 다메섹에서 다시 일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10미터만 더 뛰어봐! 김영식 지음> 김영식이란 사람이 몇십억의 빚을 지고도 다시 재기에 성공한 이유, 그것은 다시 열정을 가지고 도전했고, 분명한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책에서 김영식 사장이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 구절이 나옵니다.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는가?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지당한 말씀이다. 걱정할 시간에 기도해야 한다. 간절하고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면 그 목표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라. 나는 너무나 힘들어 용기가 달아날 때 속으로 정신없이 기도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기도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다.”

영적인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원칙과 신실함이 중요합니다. 한번의 순종과 결단이 아닌 지속적인 순종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성실함과 꾸준함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 마라톤이듯이 영적인 삶도 마라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도전의 장은 바로 실패한 곳입니다. 그 곳에서 다시 바울은 재기에 성공합니다. 인간적으로 자신을 의심하던 아나니아에게 바울의 참 사도됨을 증명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해서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사도들과 나누었습니다. 다시 또 다시 방문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데 자꾸 다시 도전하라는 말씀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포기하지 마시고, 기도하시면서 다시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다시 재기에 성공하시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귀한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