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솔로몬의 금언 모음(2)
1. 솔로몬의 금언 모음(2)(25:1-29:27)
솔로몬의 금언 모음(2)에는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25:1)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이미 솔로몬의 금언 모음(1)[10:1-22:16]의 제목이 “솔로몬의 잠언이라” 인 것을 볼 때 두 단위가 연속이거나 아니면 유사한 성격의 모음임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솔로몬의 금언모음 (1)과 (2)의 성격이 거의 같다. 둘 다 경험적 진리를 간략히 표현한 스타카토식 금언들이고, 전체적으로 반의평행 형식의 빈도가 매우 높다. 개별 잠언의 해석을 도울 주제적 문맥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유사하다.
학자들은 오늘 솔로몬의 금언 모음(2)를 크게 두 단위, 25~27장과 28~29장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서 대체로 동의 한다. 이러한 구분도 앞서 솔로몬의 금언모음(1)에서 나뉘어졌던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25-27장과 28-29장을 구분 짓는 특징은 무엇이 있는 지 살펴보면, 전자에는 비교법과 은유가 많이 나온 대신 반의 평행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후자는 반의평행을 많이 쓰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내용상 후자가 반의평행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의와 불의, 부와 가난을 대조하는 금언이 많기 때문이다.
각 단위에서 어떤 주제적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크게 그 주제를 구분한다면 25-27장은 ‘자연과 농업’, 28-29장을 ‘왕 또는 잠재적 통치자’라 이름붙이기도 한다.
1)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의 편집(25:1-25:28)
25장 1절에 솔로몬(B.C. 961-922)의 잠언을 히스기야(B.C. 715-687)의 신하들이 편집했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서두에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단락의 전체적인 제목이 솔로몬의 금언 모음(2)가 된 것이다.
사실 왜 솔로몬의 금언 모음과 연이어서 붙어 있지 않고, 중간에 지혜자의 말씀 모음이 들어가 있는 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솔로몬 사후 200년이 넘는 후대에 편집되어지고, 추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솔로몬의 금언 모음(1)은 모두 375개의 금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통상 10:1에 나오는 “솔로몬의 잠언”이란 말 속의 이름 솔로몬(המלשׁ)의 숫자 값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오고 있다. 유대인들은 숫자를 표현하는데 자신들의 알파벳을 사용했다.(ex) א=1, ב=2, ג=3 등) 솔로몬이란 이름은 שׁ=300, ל=30, מ=40, ה=5 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다 더하면 375가 된다. 이 수와 둘째 부분의 전체 금언의 수가 일치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완벽한 솔로몬의 잠언에 더 많은 잠언을 추가하기란 당대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열왕기상 4장 32절을 보면 솔로몬은 생전에 많은 잠언을 말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다섯이며” 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 수많은 하나님의 잠언은 히스기야 시대에도 전해지고 있었고, 그것을 추가로 최종적으로 확정된 때가 히스기야 시대이다. 잠언 25장 1절 단 한절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많은 것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특별히 왕에 관한 잠언이 25장 1-7절까지 서두 부분에 나오는 것을 보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이제 남유다만 남고 또한 앗수르의 침공이 있는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에게 필요한 잠언 말씀인지도 모른다. 이후에 왕에 관해서는 29장 1, 14절에서 2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25장 8-10절까지는 다툼에 관한 잠언이다. 자신의 화를 누르지 못해 성급하게 나아가 싸우는 자는 이웃에게 도리어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웃과 혹 다투거든 그 사람과 풀고, 그에 관한 비난과 비밀을 남들에게 누설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오히려 너를 욕하며 비난하는 나쁜 소문(수욕)이 평생 너를 따라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11-15절은 지혜로운 말에 관한 잠언이다. 11절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마음에 또렷하게 기억되는)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나온다. 한 번 상상력을 동원해서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를 생각해보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 아름답듯이 우리의 입술에 지혜로운 말이 있기를 바란다. 부드러운 혀는 뼈도 꺾을 수 있느니라.
힘으로 안되는 일을 세치 혀로 가능케 하는 일을 보게 된다.
16-22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먹는 것에 관한 꿀과 물에 관해서도 나오고, 이웃에 관한 거짓 증거에 관해서도 나온다. 그리고 이웃 관에 관계에 관해서 17절에 나오는데 도리어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고 경계의 말씀을 하고 있다. 이웃집에 자주 가게 되었을 때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렵다고 이야기 한다. 가끔 오는 친구가 반가운 때가 있다. 어떤 이웃은 매번 일도 없이 오가며 사람을 피곤하게 할 때가 있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고 피곤할 때가 있다. 와서 꼭 좋은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흉을 보고 간다. 이런 이웃과 친해지고 싶겠는가. 특별히 21-22절을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이다.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다는 말은, 우리 말로 하면, 원수의 얼굴을 뜨겁게(낯 뜨겁게) 한다는 말이다. 얼굴이 하도 빨개져서 핀 숯이 머리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원수가 얼굴이 부끄러울 정도로 도움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원수를 대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시리라고 축복의 말씀을 하고 있다. 잠시 생각해보면, 하늘의 상 이전에, 원수까지 품을 수 있는 넒은 마음이 미리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랑으로 원수가 최고의 이웃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24절 말씀은 이전에도 자주 나왔던 말씀이기도 하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1장 9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또 21장 19절에 보면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말씀을 읽다보면,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음녀의 유혹을 조심하라.. 게으른 자는.. 그 말씀들이 계속 반복되어지는 이유는 반복하고 반복해서 결코 잊지 말아야할 교훈이기 때문이다. 큰 집에서 산다는 것은 잘 산다는 말이다. 가진 게 많고, 아무리 부유해도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산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매일 매일이 지옥과 같을 것이다. 말씀은 그 해결책으로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 한다. 이 말씀을 보면, 다투는 여인들과 큰 집에 살았던 솔로몬을 떠올려 본다.
27절에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는 말씀은 삶 속에서 발견한 지혜이다. 좋은 것을 많이 먹으면 그것도 좋지 못하듯이 자기의 영예를 구하며 열심히 살아도 돌이켜보면 그것도 헛되다는 말이다. 이 헛되다는 말이 전도서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전도서 1장 1-4절)
28절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이 말씀은 잠언 16:32절 말씀과 같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우리의 마음가는대로 살다보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때가 있다. 가정, 교회, 자녀를 대하기 이전에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하자.
2) 미련한 자에게는 막대기니라(26:1-28)
26장 전체의 말씀은 미련한 자, 게으른 자, 거짓말 하는 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에 관해서 나온다. 지혜없는 자에 관한 것을 다 모아 놓은 것 같다.
3절에서는 미련한 자를 짐승에 빗대어 막대기로 그 등을 때려야 한다고 말하고, 4절에서는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말도 섞지 말고 대답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도 그 미련한 자처럼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8절에서는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하는데 현대 말로 하자면,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총에 총알을 넣어주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이다. 미련한 자가 그 총을 어떻게 사용하겠는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어서 미련한 자의 특징에 관해서 11절에 나온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미련한 자의 특징이 나의 모습 속에도 나타난 것을 보게 된다. 미련한 자가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고 26장을 읽다가 이 11절 말씀을 읽으면, 이 미련한 자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그 미련한 것을 거듭해서 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지 말아야지 해놓구선 또 그 일을 거듭 반복하고 있다. 우리의 죄된 모습이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12절 말씀이 더 무섭다. 표준새번역으로 이렇게 나온다.
“너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나, 그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희망이 있다.” 우리는 자신 스스로를 지혜롭다 여기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우리 자신보다 오히려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13-16절까지는 게으른 사람에 관한 교훈이 나오는데 재미있는 표현이 15절에 나온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얼마만큼 게으른 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밥상 차려놓고, 숟가락질 하는 것도 괴로워할 만큼 게으르다는 말이다.
이후에 다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22절 한 절을 보면,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이 말은 소화가 잘 된다는 말이다. 요즘 삼시세끼와 같은 요리프로가 유행이라지만, 남의 말을 하며 오늘도 별식을 제공해주는 쉐프가 되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26장에서는 27절을 잊지 말아야겠다.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이 말씀을 읽으면, 부메랑이 생각난다. 우리의 말에도 부메랑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이, 우리가 함정을 파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게 되고, 남을 비난하는 자는 그 비난을 고스란이 되돌려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도 무슨 부메랑을 날리고 있는가. 그 부메랑은 다시 우리 자신에게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3)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27:1-27)
27장 전체는 다양한 주제의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에 관한 교훈, 친구에 관한 교훈도 있고, 칭찬에 관해서도, 사람에 관해서도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23-27절에서는 내가 하는 일에 관해서 마음을 두고 열심을 내라고 충고하고 있다.
인생에 관한 교훈은 1절을 보면,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당장 1시간 뒤의 일도 모른다. 이것이 인생이다. 주변에 잘 살던 이웃이 한 순간에 시련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건강하던 이웃이 어느 순간 건강을 잃은 것을 보게 된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자랑하지 말며, 교만하지 말라.
27장에서 2절 말씀에는 칭찬에 관한 깊은 교훈이 담겨 있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찌니라” 자기 스스로하는 칭찬은 어찌 되었든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칭찬과 권위와 존경은 내 입으로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다. 21절에서 칭찬에 관해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말씀이 나온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이 시련한다는 말을 쉬운 성경에서는 ‘칭찬은 사람을 달아볼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칭찬으로 그 사람을 하늘 높이 치솟게 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가벼운 사람인지, 칭찬을 받은 그 사람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유명한 책이 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칭찬 앞에서도 자신을 으스대기보다는 칭찬을 받게 하신 이인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오는데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을 삼으려고 했다는 말씀이 나온다. 요한복음 6:15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엄청난 사람들의 칭찬과 인기를 얻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가셨다. 칭찬은 그 사람의 무게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7장에서 마지막으로 새겨볼 말씀은 23절 말씀이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이 말은 목양을 잘 하라는 말이다. 우리를 먹여주고, 입혀주는 이들이 있다. 우리 삶의 영역 안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양과 소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들을 위해 관심을 갖고 기도하라는 말이다. 다른 일에 관심 갖고, 밖으로만 돌지 말고, 내실을 기하고, 실력을 기르고, 내공을 쌓으라는 말과도 같다. 풀을 베고 또 베도 산에서 새 움이 돋아 꼴을 거둘 수 있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러한 풍족함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4)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28:1-28)
28장에서는 의인과 악인, 가난한 자와 부자에 관한 교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의 평행 형식으로 대부분이 쓰여져 있는데 여러 가지 생각해볼만한 교훈이 많이 나오고 있다.
1절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악인이 왜 도망합니까? 지은 죄가 많고, 허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인은 사자같이 당당하고 담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5절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악인은 공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 즉 의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확실히 깨닫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면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부익부를 정당화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높은 이자로 많아지게 된 재산은 가난 한 사람을 위해 써야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9절은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귀를 돌리고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참 열심히 합니다. 그 기도는 누구를 위한 기도입니까?!
13절은 회개에 따른 은혜와 긍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회개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불쌍히 여김 받고 은혜 받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를 또한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우리의 이웃에게도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길줄 아는 마음을 가집시다.
14절에 복을 받는 비결이 나오는데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라고 나오고 있고, 풍족하게 되는 비결이 25절에 나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고 의지하는 자는 풍족한 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반대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고(14절), 마음을 탐하는 자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25절), 26절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자기 마음을 믿고, 자기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하는 것을 경계하고, 대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라고 말한다. 뜬금없이 김국환씨가 부른 <타타타> 노래 한구절이 생각난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 없지~♬”
5) 의인이 통치하면 기뻐한다(29:1-27)
29장에서도 의인과 악인에 관한 교훈이 반의평행 형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29장에서 2절 말씀을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는 말씀을 읽는데 불현 듯 히스기야 왕이 생각났다. 이 잠언을 읽으며 히스기야 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백성이 즐거워하는지 탄식하는지를 가늠해보고, 자신이 의인인지 악인인지를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29장에서는 4절과 14절에 왕에 관한 교훈이 나오기도 한다.
전체적인 29장의 말씀을 볼 때 18절과 25절 말씀이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18절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 계시가 없으면 사람은 사사기 시대처럼 자신의 소견을 좇아 살게 된다.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은 묵시와 계시를 비전으로 해석한다. 비전이 없으면 사람은 마음가는대로 행하며 살지만, 비전이 있다면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는 말이다. 비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그 인생을 결정짓는 다는 말이다. 이 구절 속에서 비전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삶의 비전이 없이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비전은 무엇인가?
얼마의 재산을 모으고, 내 집 마련하는 것이 비전인가? 그 다음에는.. 자녀들 좋은 대학가는 것이 비전인가.. 그 다음에는..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있다. 더 높은 비전을 사모하라. 우리 교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25절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마땅히 두려워해야할 분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의지해야할 분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인가. 사실 우리의 삶의 모든 선택은 이 둘 중 하나이다. 선택과 결단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 오늘도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 암송 말씀(잠언 27:1) ☆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교육 및 훈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언] 성경공부 11강(지혜와 복음서 그리고 서신서) (1) | 2020.04.02 |
---|---|
[잠언] 성경공부 10강(현숙한 여인) (0) | 2020.04.02 |
[잠언] 성경공부 8강(지혜자의 말씀) (0) | 2020.04.02 |
[잠언] 성경공부 7강(솔로몬의 금언 2) (0) | 2020.04.02 |
[잠언] 성경공부 6강(솔로몬의 금언) (0) | 2020.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