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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잠언] 성경공부 11강(지혜와 복음서 그리고 서신서)

chapter 11. 지혜와 복음서, 그리고 서신서

1. 신약과 구약의 지혜와의 관계

지혜 사상(개념)이 신약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혜의 어휘, 지혜의 문학양식, 지혜 사상 등 여러 흔적이 신약성경 여기저기에 명시적 혹은 암시적으로 배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한 사실로 생각된다. 그래서 우선적으로는 신약 성경의 복음서와 서신서에 나타난 히브리어 호흐마(“지혜”)의 헬라어 번역어인 소피아와 히브리어 하함(“지혜로운”)의 번역어인 소포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복음서와 지혜

1)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

공관복음들은 여러 모양으로 지혜를 예수님과 연결시킨다. 우선 예수님은 어린시절부터 지혜로운 아이로 자라났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2:40).’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2:52).’

예수님은 이미 열두 살 때에 성전에서 선생들과 토론하였는데 탁월한 지혜를 지니고 계심을 드러내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2:46-47).’

공관복음들은 또한 예수님을 지혜교사의 모습으로 그린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내용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서 지혜의 그것과 여러 모양으로 닮았다. 특히 그의 많은 금언들과 비유들은 자연과 일상생활에서 이끌어 낸 것들로 잠언 등의 지혜와 많이 닮았다. 예수께서는 어려운 문제를 내신 다음 그것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풀어주시기도 하는데 이도 지혜에서 발견되는 양상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혜 교훈이었음은 우선 산상수훈에서 살필 수 있다. 산상수훈은 그 마감 부분을 보면 마태가 산상수훈 전체를 지혜의 가르침으로 결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다 기록한 다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사람이요, 듣고 행치 않는 자는 어리석은사람이라고 결론한다(7:24-27).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그 목표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지혜로운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산상수훈은 그것이 취하고 있는 교훈들, 경계와 권면들, 역설적인 교훈들을 볼 때 전체적으로 지혜의 형식과 내용으로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의와 악 등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대비하여 말하는 점, 행위나 삶을 많이 강조하는 점, “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점(5:12, 46; 6:1, 5, 16) 등은 구약의 지혜가 지니는 특징이다. 특히 은 잠언의 대표적 가르침인 보응의 원리에서 행위의 결과에 대해 말하는 개념이다. 형식에 있어서는 팔복의 항목들을 시작할 때 쓴 단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들 수 있다. 이 단어에 상응하는 히브리어는 아쉬레’(복이 있나니)인데 이는 지혜 문학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단어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볼 때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혜교훈으로 예수님 자신은 지혜교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들도 지혜 교훈의 성격이 짙다. 마태복음(13), 마가복음(4), 누가복음(8, 13)에 나오는 천국 비유들은 그 소재를 모두 자연이나(, , , 길가, 돌밭, 가시떨기, , , , 겨자씨 등) 일상생활에서(가루서말, 누룩, 보화, 소우, 진주, 장사, 물고기, 그물, 그릇) 얻고 있다. 비유들이 어떤 좋은 결과를 지향한다는 점도 잠언의 지혜를 닮았다. 값진 보화에 대해 열정을 낼 것을 가르치는 교훈도(밭에 감추인 보화, 좋은 진주 비유) 지혜를 값진 보화보다 귀하게 여기라는 잠언의 교훈을 닮았다.

공관복음에서 큰 흥미를 끄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의 뛰어난 지혜자로 해석하는 점이다. 예수님은 지혜를 소유한 정도로만 그치는 분이 아니고 그 분 자신이 지혜자이시며 지혜자의 대표격인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말해진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12:42).’

공관복음은 이처럼 예수님을 가장 탁월한 지혜자로 이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1:19절에 보면,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의 정당성을 지혜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씀 속에서 인자(예수님) = 지혜라는 도식으로 설명되어 질 수 있다.

 

2) 요한복음

요한복음에는 지혜란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구약의 지혜, 그 중에도 특히 잠언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지혜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인간에게 생명과 진리를 주시기 위해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오신 성육신한 지혜로 간주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계셨던 말씀인데 그(말씀)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잠언 8장에서 지혜가 태초에 아니 창조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22-26),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곳에 있으면서 창조에 개입했다고(27-30) 말씀한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말씀-로고스)에 대한 진술과 잠언 8장의 지혜에 대한 진술이 정확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인격화된 지혜와 동일시하므로 그의 천상적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말씀) 기독론은 잠언의 지혜에 관한 묘사에서 강하게 영향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요한복음은 말씀에 대해 진술함으로 시작한다. “말씀의 기원, 창조시의 사역, 현재의 사역 등이 차례로 진술된다. 그러다가 결국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해 준다(1:17). 메시지를 내신 분이 바로 자신이 낸 메시지의 내용(말씀)과 동일시 되고 있는 것이다. 잠언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잠언에서는 지혜는 기본적으로 잠언이 가르치는 교훈의 내용이다. 그런데 어느덧 잠언은 교훈의 내용인 지혜를 인격화 시켜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소위 지혜가 바로 그 인격이다. 잠언에서도 메시지의 내용이 그 메시지를 내는 인격과 동일시되는 셈이다. 요한복음과 잠언은 메시지를 내놓는 인격을 그 메시지의 내용과 동일시하여 제시한다는 점에 있어 하나의 분명한 유사점을 보인다. 이 역시 요한복음이 잠언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케 한다.

 

3. 바울의 서신서와 지혜

1) 로마서

로마서에서 지혜”(또는 지혜로운)란 말이 구약의 지혜와의 연관 속에서 쓰인 것으로 보여지는 곳은 11:3316:27절 이다. “지혜”(또는 지혜로운)가 이외에 여섯군데(1:14, 1:22, 11:25, 12:3, 12:16, 16:19) 더 쓰였지만 이 경우들은 모두 구약 지혜서와 관련된 의미가 아니고 통상적인 판단 능력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다. 그렇게 이 두 절 속에 나타난 지혜에 관한 의미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11:33절을 보면, 바울이 그 유명한 토론, 즉 구속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선택의 문제를 다룬 토론(9-11)을 마감하는 단락이다. 여기에는 구약의 지혜를 연상케 하는 많은 어휘가 나오고 있다. (지혜, 지식, , 모사, 측량치 못할)

바울은 복음으로 구원받는 문제에 있어 애초의 선민(이스라엘)의 버려짐과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세워짐이라는 구속사의 너무나 큰 신비에 대해, 그리고 그 신비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지혜에 대해 큰 소리로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울은 인간의 지혜에 한계가 있다는 것, 인간은 하나님이라는 예측 불가한, 불확정적 요소와 맞닥뜨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신비에 관해서 11:33절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16:9)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16:33)

두 번째로 로마서 16:27지혜는 어떠한가, 16:25-27절의 문맥을 보면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복음, 즉 신비의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준비하신 신비의 계시인데,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속사의 신비한 정점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 속에 영세 전부터 구속사를 운영해 오셨는데 이제 그 절정의 시간이 되었으므로 실체를 드러내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그를 전파하는 복음이다. 이러한 구속사의 경륜은 인간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 있는 것으로 인간의 지혜로는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신비의 경륜이요 지혜이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간의 죄를 도말하고 그들이 받을 형벌을 다 제거하신 것이다.

이제 복음(십자가)를 통해서 죄인은 의인이 되며 의인이 받을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된다. 한편 예수님(의인)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처럼 취급되고 죄인이 받을 고통과 형벌을 맛보셔야 했다. 인간의 계산적 지혜는 죄인은 형벌을 받고 의인은 복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죄인이 축복을 받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의인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는 복음은 이처럼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하나님의 지혜만이 아시는 도덕질서의 신비인 것이다. ‘종교는 도덕을 뛰어 넘는다

 

2)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는 신약성경 전체적으로 지혜란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다. “지혜1:17-2:13절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따. 이 부분은 바울이 복음을 해설하는데 지혜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고린도 교회는 헬라 문화권에 위치한 교회였다. 헬라의 지혜가 인간 정신의 지고의 가치인 양 인식되는 사상적 분위기 속에서 고린도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고 또한 복음적 삶을 살아야 했다.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와 교회가 위치한 고린도 지역을 향해 복음을 변증하고 있다.

먼저 1:241:30에 대해 살펴보면, 바울은 복음, 곧 십자가의 도를 하나님의 지혜로 제시하면서 이 세상 지혜가 스스로 교만하여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복음을 통하여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다고 말한다.(고전 1:18-20)

참된 지혜는 헬라 철학이나 문화가 주장하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이다. 복음은 곧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바울은 구약의 복된 지혜를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다. 지혜는 생명나무요 복이며, 장수와 부와 존귀를 갖다 주며, 즐거움과 평강을 인간에게 주는데 그 지혜가 바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는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에 관한 말이 고린도전서에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고린도전서 2:6-8절에도 나오고, 318절에는 지혜로운 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와 비슷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11)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아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도 우리 스스로는 낮추고, 낮추어 겸손한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겠다.

 

3) 골로새서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야고보서와 더불어 신약의 지혜서로 간주되기도 한다. 물론 두 책을 적극적으로 지혜서로 분류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든 골로새서와 에베소서가 지혜에 큰 관심을 지니는 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분량이 크지 않은 책들이지만 분량에 비해 지혜에 관련된 어휘가 많이 나온다. 두 책 중에 골로새서 한 권 만을 다루는 것은 골로새서가 그리스도를 지혜 용어로 설명하는 일에 더 명료하고 명시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지혜란 단어도 골로새서가(6), 에베소서보다(4) 더 많이 나온다.

골로새서는 장 수가 4장 밖에 안되는 작은 책이지만, “지혜가 여섯 번이나 나온다. 책의 크기 대비 빈도수를 따지면 고린도전서 다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지혜 어휘도 많이 나오는데 신비가 네 번 나온다. 그 외에도 총명’, ‘지식’, ‘이해’, ‘감추어 있다등의 단어가 나오고 있다.

골로새서는 먼저 1:15-17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골로새서는 이 곳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에서 담당한 역할(15-17)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15절은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4절 에서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창조에 관한 언급은 잠언 8:22-26절의 말씀과 상통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에 존재하신 분일 뿐 아니라 이번에는 창조에 직접 개입하신 분으로 설명된다. 이는 잠언 8:27-31절의 말씀과 상통한다. 잠언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지혜가 거기에 있었고’(27) 라고 말하고 있다. 지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일에 직접 관여하였다. 골로새서 1:16절이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한 것은 바로 잠언 8:27-31절의 영향으로 보인다.

골로새서 2:2,3절에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비라 말하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 역시 지혜의 영향이 명료히 드러나는 곳이며 소위 바울의 지혜 기독론이 나타난 곳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신비라 한 것은 특정 시점에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구속사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경륜의 불가해한 깊이를 표현하고자 한 것일 것이다. 로마서 11:3316:27, 고린도전서 2:7절에서도 바울이 복음 또는 그리스도를 신비로 말한 것을 이미 살핀 바 있다. 구속사를 완성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인지가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구원의 길이신 그리스도 역시 인간의 인지 능력 너머에 있는 신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이며 능력의 신비이며 지혜의 신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이나(3:16-18 ), 지혜는 이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하며 아무리 귀한 것(보석)이라 하더라도 지혜에는 비교할 바 못된다는 생각은 이미 구약의 지혜 사상에서 잘 알려진 생각이다. 지혜는 이처럼 그 소중한 보물(지혜)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골로새서 2:2,3의 말씀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며 모든 보화, 즉 구속과 죄사함,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는 구약 지혜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