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및 훈련

[잠언] 성경공부 8강(지혜자의 말씀)

chapter 8. 지혜자의 말씀 모음

1. 지혜자의 말씀 모음(1)(22:17-24:22)

솔로몬의 잠언(10:122:16)금언이었던 데 반해, 지혜자의 말씀 모음(1)은 다시 아들을 향한 권면의 장르인 훈계로 돌아간다. 오늘 우리가 나눌 잠언의 대부분은 2인칭 명령으로 된 훈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훈계들은 보통 두 절 한 조로 이루어진다. 한 절은 명령(또는 금지) 자체를 전하는 절이고, 다른 한 절은 그 명령(금지)의 이유를 말하는 소위 동기부여절이다.

22:17절에 나오는 지혜자의 말씀들이 셋째 부분의 시작을 알리는 제목이다. 즉 지금까지 전개된 솔로몬의 금언들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지혜자의 말씀들이라는 새 단위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사실 지혜자의 말씀들이란 구절은 17절 문장의 일부로 들어가 있어 제목이라는 인상이 뚜렷하지는 않다. 그러나 22:17에서 장르의 큰 전환이 일어나고 있어 이 구절을 새 단위의 시작을 알리는 제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셋째 부분은 거의 훈계의 장르로 되어 있지만 금언도 간혹 발견되기도 한다(23:24; 24:3,5 ).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NIV 성경을 보면, 지혜자의 말씀들이 서른 가지 교훈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너에게 서른 가지 잠언을 써 주지 않았느냐? 거기에 권고와 지식이 담겨 있다(공동번역)

내가 너에게, 건전한 충고가 담긴 서른 가지 교훈을 써 주지 않았느냐?”(표준새번역)

Have I not written thirty sayings for you, sayings of counsel and knowledge”(NIV)

실제로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없지만,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 성경은 서른가지의 교훈을 구분해서 이해하기 쉽게 써놓고 있다. 그리고 넷째 부분(지혜자의 말씀 모음(2)[24:2334])이 그것의 제목을 이것도 지혜로운 자의 말씀이라”(24:23)라고 한 것도 지혜자의 말씀들을 셋째 부분의 제목을 전제하고 이후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지혜자의 말씀들부분의 교훈을 개수로 이야기하자면, 학자들 마다 다르게 36~60개로 주장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른 가지의 교훈에서 몇 개의 교훈이 추가된 것이다. 특별히 이 잠언 22:17-24:34절 까지는 이집트 지혜문학이라는 아메네모페의 교훈과의 유사성 때문에 신학자들 사이에 아직도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우리는 이 교훈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지혜와 지식을 분명히 깨달아 지혜자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귀한 시간이 되어야겠다.

 

1) 잠언 서른 마디(22:17-24:22)

잠언 22:17-21절 까지는 서두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오늘 특별히 일러주는 것이니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라는 권고가 서두에는 담겨 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라고 지혜자의 말씀들의 목적과 쓰임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1) 약한 자에게서 빼앗지 말고, 곤고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호해주신다(22-23).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했는데 성문은 그 당시에 법정과도 같은 장소이고, 마을의 유지들과 장로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사무엘상4:18절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 성문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문이라는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장소인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생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지 말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2) 사람 봐가며 사귀어라(24-25). 노를 품는 자, 울분한 자를 다른 말로 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 성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우리 자신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성급한 사람과 같이 다니다 보면, 그 뒤처리를 늘 도맡아서 하게 될 것이고, 화를 잘내는 사람과 사귀다 보면, 자기도 어느새 화를 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예수님과 사귀고 예수님을 닮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보증서지 말라(26-27). 26절에 보면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서약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지금의 말로는 동업이나 공동명의자로 보증이나 계약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이 잘 되면 좋으나 그렇지 못하면, 평소에 누워 자던 침대까지 차압당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는 말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최악의 결과까지 고려해서 아예 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4) 땅의 경계표지를 임의로 바꾸지 말라(28). 옛 선조와 조상이 세워놓은 지계석이 있다. 우리 조상들도 비석을 세우고, 지금도 각 도와 각 시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계석을 옮긴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땅이 넓어지고 줄어드는 것을 뜻하는데 그러한 일에 왜 갈등과 분쟁이 없겠는가? 분명히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땅과 재산에 관한 것 뿐만이 아니라 남녀간에 부부간에 성도간에도 분명한 지계석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옮기려고 하는 경우 그 마음 중심을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욕심과 탐욕,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

(5) 자기 사업에 근실한 자는 왕 앞에 설 것이다(29). 자기가 맡은 일, 자기 생업에 근면성실한 사람,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 사람은 존귀하게 쓰인다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이 집청소, 빨래, 설거지같은 작은 일이라도 근실하게 행하면 남편이 잘되고, 자녀가 잘 되고, 가정이 잘된다.

(6) 정치인, 권력가진 사람 앞에서는 음식 먹는 것도 삼가라(23:1-3). 구약시대에 관원이라면 높은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은 음식 앞에서, 기본적인 욕구 앞에서 무너질 때가 많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보면, 너무 좋아서 여기가 어디인지를 잊어버리고 게걸스럽게 먹을 때가 있다. 지혜자는 네 목에 칼을 두라고 경고한다. 목에 칼이 들어왔는데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겠는가. 이 음식을 먹고 나면, 정치인은 그 음식값으로 조용히 손을 내밀 것이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식사도 하고, 갑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마주해야할 일이 있다. 그럴 때 일수록 목에 칼을 두고 자제해야 함을 당부하는 말이다.

(7)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마라(4-5). 재물은 허무한 것인즉, 재물을 잡으려고 하면 도리어 재물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부자가 곡식 창고를 만들어 곡식을 가득채운 그 다음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기억하라!

(8)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라(6-8). 악한 눈이 있는 자를 다른 말로 하면 인색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색한 사람이 음식을 주었다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마음껏 먹으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다른 속뜻이 있어 먹은 것도 토하게 되는 헛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말은 좋은 데 그 마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 말과 그 마음이 일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귀라.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어떨까.

(9) 미련한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9). 두말 하면 잔소리다.

(10) 외로운 자식, 약한 자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다(10-11). 하나님이 힘없고 약한 자들의 구속자가 되어 주신다.

(11)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12). 착심한다는 말은 마음을 한 곳에 붙이는 것,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디모데전서1:4절에 사도 바울은 믿음의 참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어디에 우리의 마음을 두느냐가 중요하다. 지혜자의 훈계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일에 우리의 마음을 두자.

(12) 아이를 훈계해서라도 그 영혼을 구원하는데 힘쓰라(13-14). 지금 시대에 아동체벌을 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시대이다. 미국에서는 아동이 멍들고 맞은 흔적이 있으면 경찰이 와서 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교훈이 지금 시대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가?! 훈계, 체벌을 왜 하는지 그 분명한 목표가 영혼을 구하고, 그 아이를 살리는 길이라면 혼을 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 비상식적인 언행과 체벌이 아닌 방법으로 말이다

(13)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15-16). 아이가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가면 마치 어머니가 좋은 대학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지혜로운 아들을 가진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는가

(14) 죄인을 부러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17-18). 우리 주변에서 편법과 불법을 통해 형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집과 차와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속으로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때 두 눈을 감고 여호와를 생각하라. 그러면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다. 참된 형통과 성공은 나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특별한 존재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15) 듣고 지혜를 얻어 바른 길을 걸으라(19-21). 여기서는 사람을 사귀는 지혜에 관해서 상세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술 취하고, 탐식하고,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사귀지 말라는 훈계 형식이다. 그 이유는 21절에 가난하여지고, 해어진 옷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나온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만 잘 만나도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선생님을 잘 만나도 그렇고, 아내를 잘 만나도 그렇고, 친구를 잘 만나도 그렇다.

(16) 부모를 공경하라!(22-25). 낳아주신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나이 드신 어머니를 경히 여기지 말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은 하지 말라. 이것이 진리이니 이 진리를 사들이되 팔지는 말아라.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렇게 하여라! 23절은 사실 따로 떼어놓고 읽어도 좋은 말씀이지만, 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전체적인 내용 속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이 말씀을 읽는데 문득 그렇지 나도 언젠가 늙어서 나이든 부모가 될텐데 그 때가 돼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언젠가 늙고, 병들고, 힘없을 때가 반드시 온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이 말이 진리처럼 다가오고 더 강하게 우리의 가슴을 치는 것은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때이다. 부디 아파트를 사고 팔지언정, 이러한 진리를 사고 팔지 않기를..

(17) 네 마음과 눈을 음녀에게 주지 말라(26-28). 지혜자는 아들과 같은 젊은이에게 네 마음과 눈을 지혜에게 두라고 이야기 한다. 성적인 유혹에 빠지면 궤사한 자, 즉 변절한 자가 많아 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 음녀의 유혹은 대놓고 하지 않고, 강도처럼 몰래 매복했다가 닥치게 되는데 노리고 공격해오는 적을 막기는 정말 어렵다. 음녀로 인한 변절은 가정과 부부와 신앙과 그 모든 것에 치명적인 암덩어리가 되어 우리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18) 재앙이 뉘게 있느뇨 폭탄주를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29-35). 재앙과 근심과 분쟁과 원망, 까닭없는 상처, 붉은 눈이 누구에게 있는지 말씀을 통해 보면, 술에 잠긴 자에게 그리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수천년 전인데도 술에 잠긴 자, 혼합한 술(일명 폭탄주)을 구하러 다니는 자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다.

31절에서 35절까지는 술취한 자의 현상에 대해서 설명해 놓고 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나온다.

눈에는 괴이한 것만 보일 것이며, 입에서는 허튼 소리만 나올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때렸는데도 아프지 않고 나를 쳤는데도 아무렇지 않다

(19)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함께 있지 말라(24:1-2). 사람을 사귀고 어울리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된다. 악인의 모습은 강포(몹시 우악스럽고 사나움)한 폭력적인 모습인 동시에 그 입술에서는 잔해(문젯거리나 말썽거리를 일으킴)를 말한다. 예수 믿으면서 참 많은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끊어지는 경험을 한다. 동시에 참 많은 믿음의 성도들과 연결되어지는 경험을 한다.

(20) 지혜로 집을 건축하고 지식으로 방들을 채우라(3-4). 인간은 누구나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혜로 집을 지으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운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21) 모략으로 싸우라(5-6). 영화 300을 보면, 스파르타의 용사 300명과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의 100만 대군과의 테르모필레 전투가 나온다. 300명의 작은 수로 어떻게 100만이라는대군과 맞설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매우 좁은 협곡에서 싸웠던 모략(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전쟁이요 끝없는 싸움의 연속인데 모략을 세우고 싸움에 임하라! 유능한 장수는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기고 싸운다는 말이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22) 지혜의 높이는 높아서 어리석은 사람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7). 지혜의 초월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사람은 성문, 즉 법정과 같은 곳, 사람들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성문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지혜의 말을 이야기한다. 이 한 문장을 읽는데 하나님의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한 사람은 성문이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예레미야가 고국의 멸망을 예언할 때, 요나가 적국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예언할 때, 다윗이 거인 골리앗 앞에 물맷돌 몇 개 들고 나아갈 때, 나사렛 예수님이 자기의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갈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의 지혜에 이른 사람은 상황과 환경과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반할 지라도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을 성경 속에서 볼 수 있다. (* 나는 하나님의 사람인가??)

(23) 악을 꾀하는 자는 사특한(마음이 간사하고 심술궂은) 자다(8-9). 사특한 자는 악을 행하기를 계획하고, 그의 생각은 죄로 가득하고, 거만한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

이 두절 말씀을 읽는데 시편 11절말씀이 생각난다.(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누군들 악을 꾀하는 자가 되고 싶겠는가. 사특한 자가 아닌 복있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기를 읽는데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사람을 살인한 죄인이 잡혀서 알아보니까 그 동생이 바로 그 시의 인망있는 시장이었다. 왜 그런 살인을 저질렀는 지 물어보자. 그 죄인인 형이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알콜중독에 어머니를 때리고 하는 가정에서 자랐는데 내가 무엇을 보고 배웠겠소?‘’ 뒤이어 달려온 동생인 시장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물었다. ‘형이 말한대로 우리 집안은 술중독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똑같은 가정에서 자란 형과 동생의 모습이 어떻게 이렇게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환경과 상황에 절망한 사람과 그 속에서도 지혜를 찾는 자의 인생의 모습은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24) 나의 힘의 강약을 알고자 한다면 환난날이 닥치면 알 수 있다(10). ‘대신에 믿음을 넣고 읽어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네가 만일 환난날에 낙담하면 네 믿음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우리의 인생 중에 누구나 환난과 재난과 아픔을 경험할 때가 있다. 어려울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발휘되듯이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욥의 믿음을 보라. 그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환난을 당했지만, 욥기 23: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25)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11-12). 이 말씀을 읽고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다시 말씀을 읽어보라. 우리 주변에 사망으로 끌려가고 영혼이 죽음에 이르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않고, 나 몰라라 하며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볼 때가 있다. 믿지 않는 가족과 친구에게 단 한번이라도 예수 믿으라고, 십자가의 사랑에 관해서 말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나중에 갚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26) 꿀과 같은 지혜를 얻으면 우리의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다(13-14).

우리는 앞서 23:16-18절에서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래가 있겠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27)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 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15-16).

기독교의 신앙은 다시 일어나는 신앙이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열두 사도, 사도 바울, 초대교회 때 일어난 박해, 순교의 피로 세워진 교회의 모습이 오늘 16절 말씀 속에 나오고 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을 만나면 망하고 만다. 다시 일어서는 은혜를 구하라. 제자 베드로도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났다.

(28) 원수의 재앙을 기뻐하지 말라(17-18). 남의 슬픔을 기뻐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 그 슬픔을 우리에게 옮기실 수도 있다. 세상이 경쟁사회다 보니 라이벌의 망함은 곧 나의 승리이기도 하다. 선거판을 보라! 서로의 공약보다는 서로의 약점을 밝히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게 당선된 정치인에게 공무를 잘할 것이란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29) 악인의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고 만다(19-20). 행악자의 형통은 그 미래가 없고, 등불에 기름이 없으면 바로 꺼져 버리듯 오래 가지 않을 것이기에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남 탓하지 말고, 남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하겠다.

(30) 변절자에게는 재앙이 임한다(21-22). 21절에서는 반역자라고 나오는데 변절자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반역자, 변절자들 에게는 여호와와 왕의 재앙이 속히 임하기에 늘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변절하지 않는 자로 살라는 말이다. 여호와를 향한 믿음을 져버리지 말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울을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갖았지만, 손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을 때 다윗은 크게 쓰임 받는 위대한 왕이 되었다.

 

2. 지혜자의 말씀 모음(2)(24:23-24:34)

2423절에서 34절까지는 지혜자의 말씀 모음의 추가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내용상으로 볼 때 총 6개의 추가 교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3-25절은 재판받을 때에 겉으로 보이는 얼굴을 보아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보고 공의롭게 판단하라는 말이다. 한 개그맨이 우스겟소리로 미인과 추녀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예쁜 애가 공부잘하면, 얼굴도 이쁜 애가 공부도 잘한다고 말하지만, 못생긴 애가 공부 잘하면, 독하다고 이야기 한다. 또 예쁜 애가 넘어지면 얼른 달려가서 괜찮냐고 일으켜 주지만, 못생긴 애가 넘어지면, ‘자빠지고 있네~’라고 말한다고 한다. 연예인들이 하는 패션을 따라하려는 마음에는 예쁘게 보이는 것에 대한 선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그것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26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을 표준새번역은 바른 말을 해주는 것이 참된 우정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듣기 좋은 말은 많이 하지만, 신앙에 있어서 쓴소리를 하지 않는다. 축복만을 이야기하지 심판에 관해서는 입을 닫는다. 나의 자녀가 사망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옷깃을 붙잡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27절 말씀 때문에 요즘 시집장가를 늦게 가는 것 같다. 자기 먹고 살 직장과 집문제 때문에 요즘 결혼시기가 늦춰졌다는 말이 있다. 한편으로 원시시대의 수렵을 하며 살 때를 떠올려보면 물이 있고, 열매나 과일, 농사를 지을 적당한 곳에다가 집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8절에는 이웃의 거짓증거 하지 말고 내 입술의 정직을 지키라는 말이다. 이웃을 만들지, 원수를 만들지는 내 입술을 지키는 것에 달려 있다.

29절 보응의 원리를 넘어서는 말씀이다.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찌니라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오리를 가자 하는 자와 십리를 동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주라고 이야기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딱 할 정도만 하면 딱 그 수준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한다면, 그 관계는 발전할 것이다.

30-34절까지는 게으른 자에 관한 훈계이다. 여기서 증왕에(이미 지나간 과거의 때에) 보니 게으른 자의 밭에는 가시덤불과 거친 풀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깊은 교훈을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게으른 사람,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는 자에게는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곤핍이 군사같이 이른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게으른 삶 속에서 경종과도 같은 말씀이다.

 

암송 말씀(잠언 23:17-18)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