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한동안 못찾아뵙던 시골 아버지댁을 오랜만에 방문했다.
아이들과 캠핑도 가고, 어버이날 인사도 드릴 겸 방문한 시골집에서 어느덧 일흔중반을 넘으신 아버지를 대하게 되었다.
척추협착증 수술도 받으시고, 걷는데 지장은 없지만 절뚝거리며 다니시는 아버지.
평생을 농사지으시고, 공장일에 이미 몸도 많이 망가지셨지만,
손주들 캠핑할 때 쓰라고 장작을 마련해주시는데..
집에 있는 도끼를 오랜만에 손에 잡으셨다.
낡아빠진 도끼 날과 자루는 언뜻 보기에도 별볼일 없어보였다. 과연 저런 도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내 아버지의 도끼질하는 모습에서 나의 의심은 탄성으로 바뀌고 말았다.
일흔 중반을 넘어선 아버지가 도끼질로 장작을 패는데 쩍쩍 갈라지는 나무들을 보며 중후한 내공과 같은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 마흔이 된 아들이 봐도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열번 정도 도끼질을 하자 어느새 장작이 다 마련이 되었다.
어버이날 돌봐드려야 될 것만 같았던 아버지였는데 그 도끼질 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이렇게 글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일흔 중반이 넘은 아버지의 그 힘과 패기, 중후함을 결코 모르리라.
아직도 온 힘을 모아 도끼날을 내리치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흡사 무술고수가 기를 모아 검을 한 번 휘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장작을 다 팬 후에 어렸을 적에 지게를 매고 나무를 하러 저 멀리 산에 갔다오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 때의 도끼질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지만, 정말 멋있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평생 농사일에 공장일만 하신 분이지만, 정말 존경스러웠다. 나이가 많이 드셨음에도 집중해서 힘을 쓰자, 나무들도 두 조각이 나버렸다.
젊음의 패기가 넘보지 못하는 연륜의 깊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돌아온 날이었다.
아버지,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Lif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3) | 2024.01.02 |
---|---|
5월의 어느 날 (2) | 2021.05.23 |
서울 근교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헌릉 인릉) (1) | 2020.12.16 |
82년생 김지영 책을 들고 있는데.. (1) | 2020.10.27 |
코로나 시대 자녀교육에 대한 생각 끄적이기.. (1) | 2020.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