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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신앙교육] 기독교의 기본진리 7장 요약

기독교의 기본진리’(7) : 그리스도의 죽음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이다. 그리스도가 구원을 가능하세 하신 방법은 첫째 자신의 죽음이요, 둘째 성령을 주심이요, 셋째, 그의 교회를 세우심이다.

바울은 그의 일을 화목하게 하는 직분으로, 그의 복음을 화목하게 하는 말씀으로 묘사했다. 죄는 분리를 낳았지만 십자가는 화평을 낳았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큰 간격을 만들었지만 십자가는 그것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 죄는 교제 관계를 깨뜨렸지만 십자가는 그것을 회복시켰다.

1. 십자가의 중심성

- 예수님이 죄를 위한 제물로 죽으신 사건이 성경의 중심 주제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약을 보아야 한다. 구약성경의 제사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보여주는 가시적 상징이라면, 예언자들과 시편 기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했다.

- 구약이 예언하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십자가의 절대적 중요성을 신약 성경 기자들은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지면을 그의 마지막 주간과 죽음에 할애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40%, 마가복음은 60%, 누가복음은 33%, 요한복음은 거의 50%를 예루살렘 입성과 승천 사이의 사건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 복음서는 절반으로 나뉘어 표적의 책수난의 책으로 불리기도 한다.

- 바울의 서신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에도 십자가에 강조하고 있다.

- 십자가는 우리 믿음의 상징이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2. 십자가의 의미

- 베드로 전서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 것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 세가지 이유는, 첫째, 베드로는 예수님과 가까웠던 핵심 제자 세명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둘째, 베드로가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극구 말렸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리스도가 죽으셔야 할 필요성을 시인하기가 꺼려지고 십자가의 의미도 빨리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우리를 설득시키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시몬 베드로일 것이다. 셋째,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십자가에 대한 언급은 비의도적인 것이다.

베드로 전서에서 예수님은 첫째 본으로서 죽으셨고, 둘째는 죄를 담당한 자로 죽으셨다는 것을 베드로가 지적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본으로 죽으신 그리스도

베드로는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 못되므로, 의를 위해 고난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치욕을 감수하라고 했다. 억울한 고난을 인내로 참는 것이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것이었다.

- 그리스도의 죽음이 순전히 본이었다면 복음서에 기록된 사실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불가사의로 남을 뿐 아니라 인간의 필요도 충족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구주도 필요한 것이다. 본은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이상을 불타게 하며 또 결심을 굳게 한다. 그러나 전에 지은 죄를 씻어 상한 양심에 평화를 가져오거나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도록 하지는 못한다. 반드시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으신 일을 우리의 죄와 연결시킨다.

- 신약성경의 3대 저자인 바울, 베드로, 요한이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우리의 죄를 연결짓고 있다.

2) 우리 죄를 지고 죽으신 그리스도

다른 사람이 우리 죄에 대한 책임을 맡거나 그 결과를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피 제사에 의해 더욱 상세하게 설명된다. 레위기에 나온 아론이 속죄일에 속죄 염소의 머리위에 손을 얹음으로써 자신과 백성을 그 염소와 동일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담당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16:22). 이 말씀을 볼 때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것, 그를 대신해 그의 죄에 대한 형벌을 지는 것임이 분명해진다.

신약 기자들은 예수님의 구음이 최종적 희생제물로서 구약 제사의 성취임을 쉽게 깨달았다. 구약의 희생제물은 황소와 염소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셨다. 구약의 제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었지만 그리스도는 단번에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9:28).

- 온 세상 모든 역사의 죄가 모두 그에게 지워졌다. 그는 자원하여 그 죄를 자신의 몸으로 담당했다. 그 죄를 자신의 죄로 삼은 것이다. 그는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셨다. 세상의 죄는 담당되었다. 이제 이 구주를 믿고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담당하신 이 단순하고도 놀라운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오늘날 인기가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 즉 그 분의 무한한 자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원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데 제3자인 그리스도가 애쓰고 계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먼저 이 일을 시작하셨다. 비록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동시에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신 방법을 나는 설명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이 역설을 풀지 못하거나 그 신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해도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직접 한 말은 믿을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 즉 그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형벌을 당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증거했다.

* 베드로가 말한 분명한 세 가지 의미

범죄자들에게 내리는 저주가 십자가 위의 예수님에게 전가되었다는 것, 그는 그 저주를 몸소 지고 죽음으로써 우리를 그 저주에서 해방시키셨다.

예수님도 이사야 53장의 고난의 종에 비추어 자신의 임무와 죽음을 해석했고, 제자들도 뒤따라 그렇게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베드로는 유월절을 그리스도께 대담하게 적용시켰다.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과 죄의 속박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였다. 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이 피가 우리 각각의 마음에 뿌려져야 한다.

- 어떠한 종교행위를 하거나 선행을 한다 해도 죄사함을 얻을 수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가 상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그가 죽으심으로 생명을 얻으며, 그가 고통받으심으로 용서가 오고, 그가 고난을 당하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