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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신앙교육] 기독교의 기본진리 4장 요약(그리스도의 부활)

기독교의 기본진리’(4) : 그리스도의 부활

* 이과의 목적: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거를 검토할 것이다.

우리의 주장은 그의 부활이 신성을 입증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의 신성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기적적 잉태와 부활은 그의 신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에 부합되는 것이다.

- 부활에 대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을 예언할 때 반드시 부활할 것을 이야기 했고, 바울도, 의사 누가도 법률가 클라크 경의 말도 그 그 증거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1. 부활의 4가지 증거

1) 시체가 없다

- 무덤은 비어있었고 시체는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5가지 설명들

여인들이 엉뚱한 무덤을 찾아갔다. / 무덤을 찾은 시간대, 여러명이 같이 찾아갔고, 베드로와 요한, 요셉과 니모데모도 확실히 그 무덤을 찾아갔다

기절했었다가 무덤에서 깨어나 그곳을 떠나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주장. / 백부장이 확인해주고, 십자가에 못박힌 후 내려져서 36시간이상 돌무덤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는지, 지키던 로마 군병들에게 잡혔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신비롭게 나타날 수는 없었을 것. 등등

도둑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주장 / 로마 군인들을 못속였고, 돌을 운반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수의를 남겨놓을 이유도 없다.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갔다는 주장 / 사도들의 부활선포 - 위선자가 순교자가 될 수는 없다!

로마 또는 유대당국자들이 시체를 치웠다는 주장. / 사도들이 부활을 선포할 때 그 증거로 시체를 내놓지 않고, 핍박만 했다! 당국자들의 침묵은 사도들의 증언만큼이나 부활에 대한 웅변적 증거다.

2) 수의가 헝클어지지 않았다

- 그리스도의 시체를 쌌던 수의가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우리는 그가 기적적으로 죽음을 통과해 전혀 새로운 존재 세계로 들어갔다고 믿는다.

- 수의가 놓여진 돌판. 그 위에 놓인 수의와 속이 빈 머리 수건,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간격! 그들이 보고 믿은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수의는 인간의 손에 의해 건드려지거나 접혀지거나 어떻게 되지 않았다. 그저 나방이 나와 버린 빈 번데기 껍질 같았다.

- 이것들이 부활에 대해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증거물이 된다. 남아 있는 수의와 없어진 시체..

3)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났다

- 부활한 예수님은 10회에 걸쳐 소이 베드로가 말한 택하신 증인”(10:41)들에게 나타났다.

- 부활 출현 이야기가 교묘하게 꾸며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첫째는 그 이야기가 진지하고 꾸밈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목격자의 자세한 묘사로 인해 생생하게 설명되기 때문이다.

또한 환상이 아닌 이유는 환상이 나타나는 두 가지 특징, 강한 내적 욕구와 외부환경의 유도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의도적 사고도, 어리석음 믿음도, 맹목적 수긍도 없었다. 제자들은 어리숙하게 믿지 않았다. 도리어 신중하고 희의적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란 기대도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예수님이 나타난 사건 10회를 보아도 각 사건의 장소, 사람, 분위기가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4) 제자들이 변화되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의 변화는 부활에 대한 그 어떤 증거보다도 귀한 것이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사람들과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했는가? 그들의 새로운 믿음과 능력, 기쁨과 사랑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 시몬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 사도 바울을 보라.

 

부활에 대한 증거는 시체가 사라졌다. 수의가 흐트러지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주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변화되었다. “주님은 진정 부활하셨다고 하는 위대한 기독교적 긍정 외에는 이러한 사건들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의 주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증거는 확정적이다. 이제 남은 한 가지는 믿음의 단계이다.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의심하던 도마의 힘찬 고백인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를 나의 것으로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