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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새신자반요약] 강의안 9과(주기도문)

9과 주님의 기도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아옵나이다 아멘)” (6:9-13)

1. 동기와 목적

주기도문이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주신 동기는 두가지입니다.

먼저, 누가복음 111절에 보면,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이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모두 모범기도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 모범기도문을 요청한 것이고, 이 요청에 응답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 기도문인 주기도문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의 동기는 주님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6:7-8)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이란 자꾸 되풀이해서 반복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말할 때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하면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것도 더 큰소리로 알아들을 때까지 말합니다. 하나님께 중언부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들으셨는지 못들으셨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고, 다시 말하면 반복하여 아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정을 모르실 거라는 의심의 토대위에 기도한 것입니다. 주님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알려준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의 토대가 아니라, 믿음의 토대 위에서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주기도문을 주신 목적은 오늘 말씀의 바로 전 구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68절에 보면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저희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유대인들을 말하는데 5절에 보면, 회당과 큰 거리에 서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중언부언 되풀이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리라는 믿음의 토대위에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 주기도문을 알려주신 목적은 우리 신앙의 수준, 기도의 수준을 향상시켜 주시기 위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2. 주기도문의 내용

1) 기도의 대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우리말 번역은 이렇지만, 헬라어 원문은 파테르라는 아버지라는 호칭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부르신 아버지라는 호칭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르쳐 주셨다고 해서 하나님이 남자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 모성과 부성을 동시에 지닌 분이십니다.

둘째,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시대의 상황 속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아빠 아버지와 탕자의 아버지의 의미를 보면, 아버지란 호칭은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것과 같다. 자신의 모든 나약하고 부족하고 어렵고, 죄된 모습을 아버지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아들로서의 존재로 회복되는 놀라운 감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날 때 아들과 아버지로서, 딸과 아버지로서 인격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헬라어 원문에서 이어지는 단어는 파테르 헤몬’, 우리의 아버지라고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나 혼자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정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재벌형제들의 화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나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해 계명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에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계명이 우리의 삶에 X 가 되었을 때, 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될 때, 우리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어로 하면 ‘Christ’지만, 헬라어로 하면, X로 시작하는 크리스토스(Χριστος)’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늘은 복수형으로 하늘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 온 우주를 초월하고 어디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바로 그곳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믿는 다면, 한국에 있든, 감옥에 있든, 외국에 있든 어디서든 담대하게 믿음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빛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어둠 가운데서 죄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늘 빛 되신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죄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빛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을 향한 기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두 번째 단락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기서 주체가 중요합니다. 주체를 로 한다면, “나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기를 원합니다.” 라는 고백은 내가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을 믿는 아버지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겠다는 결단이 되는 것입니다.

주체를 아버지로 한다면,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고백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더럽힌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깨끗케 할 수 없으므로,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친히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절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인데 여기서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풍부에 처할 수도 있고 빈곤에 거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쫓아 살 수 있다.

내 중심으로 살고 싶은 어둠의 권세와의 싸움을 감당하겠다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다. 내가 죽으면 그리스도가 살고, 내가 살면 그리스도가 죽는다.” - 본회퍼 -

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도구가 되겠다는 것.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은 어둠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들어갔을 때 빛으로 살지 못했을 때 세상은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이 된다면, 세상은 한 결 더 밝아질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 만큼 확장되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겠다는 적극적인 결단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말로 외운다고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그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뜻은 말씀이기에 매일 말씀을 먹고, 그 뜻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우리는 절대로 그 뜻을 이 땅에서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즉 하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기 위해 부단이 말씀을 읽고 삶으로 살아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를 위한 기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라는 기도는 주님이 주시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약함과 결핍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결핍과 약함을 느낄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였고, 주님을 의지할수록 주님의 능력이 자신의 삶을 통해 더 크게 역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후 11:30>

그리고 일용할 양식에 대한 청지기의식을 분명히 갖아야 합니다. , 나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구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만 양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청지기의식은 우리의 모든 생활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맡고 있다는 의식을 갖고, 내가 쓰고 있는 모든 것은 잠시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라는 의식이 바로 청지기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주머니만 늘리려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하려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줍니.

또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고 또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거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기도를 통해 나 역시 타인의 죄를 용서하겠다는 결단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남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내가 용서받은 자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길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우리를 향한 시험의 주체에 따라 이 구절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시험이면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것이고, 사탄이면 반드시 사람을 넘어뜨립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주님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사탄의 유혹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재인식하는 것입니다. <벧전 5:8>

사탄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기에 주님의 도우심 속에서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

그리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기도는 나의 삶에서 유혹거리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며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정말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면 나를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제거해야 합니다. 구별해야 합니다. <4:8>

우리를 위한 기도의 마지막 구절은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입니다.

악을 우리는 철학적으로 선의 부재라고도 말하지만, 악은 사람을 사람이 아닌 상태로 끌어내리는 구체적인 세력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악에 빠질 수 있는데, 악은 우리에게서 사람됨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상태를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춰보아야 합니다. 악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요즘 청소년들은 죄의식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죄인지, 왜 죄가 되는지 조차 모른 체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의 판별기준이 없기에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은 헬라어로 포네로스입니다. 바쁘다, 수고하다, 애쓰다라는 뜻입니다. , 하나님 없이 바쁜 것이 악입니다. 하나님없이 애쓰면 애쓸수록 바쁘면 바쁠수록 악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바쁘고 정신없이 살 때 일수록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지 우리를 늘 말씀의 거울에 비춰봐야 합니다.

4) 송영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대개큰 원칙으로 보건대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대개라는 우리말은 헬라어 원어의 호티라는 단어로 시작하는데 그 뜻은 때문에/왜냐하면입니다.

풀어서 해석하면 내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권세,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있기에 아버지께 이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송영의 마지막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아멘입니다. 아멘은 진실이다, 동의한다, 믿습니다, 확신합니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멘으로 끝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하심과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8-9절을 보면,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확신 때문임을 고백하는 것이 아멘입니다. 그 신뢰의 바탕 위에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3. 결론

첫째, 주기도문은 기도의 방향과 틀 그리고 수준을 교정해주는 기도의 거울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은 주기도문은 복음 전체의 개요이며, 기도의 정수이고, 기도를 가르쳐주는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주기도문은 우리 신앙의 성숙을 위한 결단의 기도입니다.

나를 넘어 하나님과 우리를 위한 삶의 결단입니다. 그래서 이 짧은 주기도문에 우리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셋째, 이 기도의 원천은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며 이렇게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만 주기도문을 전심으로 드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