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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새신자반요약] 강의안 11과(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

11과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

 

1. 삶의 원천인 교회생활

학새으이 힘이 학교생활에서 나오고 주부의 능력이 가정에서 비롯되듯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은 바른 교회생활에서 시작됩니다. 바른 교회생활이야 말로 교회 밖에서도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원동력입니다. 만약 교회 속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 삶의 모습이 일치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교회생활이 바르지 못한 까닭입니다.

 

2. 주일성수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는 일차적으로 주일을 어떻게 지키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주일을 일요일, 휴일로 지내는지 아니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십계명 중에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입니다.

첫째,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주일성수는 호흡과도 같다. 호흡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기 때문이다.

둘째, 반드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삶과 구별되게 구별된 예배와 만남,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삶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반드시 예배당에 나와야 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께 죄를 지을 때 했던 일이 예루살렘이 아닌 사마리아에서, 단에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중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왜 꼭 교회와서 예배를 드려야 해요? 집에서 드릴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 질문에 그래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신 분이니까 집에서도 예배를 드려도 된단다. 하지만 너 혼자서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 정말 집중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겠니? 아마 1~2주는 그렇게 드릴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랜 기간동안은 드리기 힘들거야. 교회는 하나님께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구별된 곳이란다. 그리고 신앙이 더욱 자라기 위해서는 신앙의 거울이 필요한데 그 거울이 바로 함께 예배드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거든

주일 예배는 지정된 곳에서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 아침 온 가족이 예배드리기 위하여 함께 교회를 찾는 것 자체가 더없이 아름다운 훈련이요,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깨어 있는 정신으로 주일을 성수해야 합니다. (10장 사마리아인의 비유)

주일은 거룩합니다. 그라나 주일만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날들이 다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에서 비롯된 그 거룩함은 나머지 엿새 속에서도 반드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주일성수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입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기독교인들은 왜 일요일인 주일을 지내는가?! 그 이유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럼 제사도 구약처럼 짐승을 잡아서?)

3. 전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전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불효자식이라도 부모의 유언 앞에서는 숙연해집니다. 부모의 유언은 이 땅에 남겨진 부모의 최후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자식들은 부모의 유언을 이행하기 위해 애씁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9-20절 말씀 / 16:15/ 1:8>

이처럼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전하는 주님의 유언은 모두 전도에 대한 명령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말보다도 삶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삶이 온전치 않으면 전도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사도 바울이 쓴 전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왜 이렇게 불편한 진실인 전도를 강조할까요? 전도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4. 봉사(20:25-28)

세상의 법칙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법칙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진심으로 받들고 높이고 섬기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크고, 높고, 강한 사람들이라면 아직까지 주님께서 말씀하신 섬김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은 영웅이었을지 모르나,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들을 구원자로 받을어 모시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단 한평의 땅도 정복하신 적도 없었고,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기는커녕, 당신이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기른 제자에게조차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외롭고, 쓸쓸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희한한 것은 그토록 초라하고 무력해 보이기만 했던 예수님을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주로 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으로부터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십자가 위에서 인간을 위한 섬김을 완성하신 그분을, 하나님께서 부활의 구주로 높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이후 섬김의 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섬김은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이되, 상대의 머리가 아니라 발아래까지 내려가는 것임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을 본받고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섬김의 삶이어야 하기에,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봉사가 빠질 수는 없습니다.

 

5. 친교

교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세가지는 말씀, 봉사, 그리고 친교입니다.

친교는 사도신경에도 나오듯 성도의 교제를 말합니다. 큰 교회 일수록 이 교제가 가장 약합니다. 어떤 이들은 큰 교회가 가진 익명성 속에서 홀로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을 꿈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신앙은 비록 개인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나 성장은 없습니다. 그냥 자신만의 신앙의 틀에 얽매이기 쉽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된 친교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거룩한 교통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진리로 따뜻하게 해 줄 뿐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더하게 해줍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