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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새신자반요약] 강의안 2과(인간은 누구인가)

2과 나(인간)은 누구인가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1. 자기 발견의 중요성

2400년 전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바르게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다시피 하여 가출, 허랑방탕한 삶을 사느라 인생을 망쳐버린 탕자가 대체 언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까? 자신의 실상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자기 실상을 알지 못했을 때, 그에게 아버지는 떠나 버려야 할 의미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없는 자신의 처참한 실상을 자각했을 때 아버지는, 아버지의 종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돌아가야 할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탕자의 자기 발견아버지에 대한 바른 인식아버지와 바른 관계 맺음의 전환점(터닝포인트),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오늘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랍니다.

 

1. ‘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강한 강철이나 아름다운 보석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이 아니라 흙으로 지으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삶과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참 사람인지를

흙의 특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흙의 첫 번째 특성은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흙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흙이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식물은 물론이요, 새나 동물 그리고 사람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육식동물조차도 풀을 주식으로 하는 초식동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흙이 없다면 이 세상 모든 생물은 아예 존재할 수 조차 없다.

하나님께서 이렇듯 생명인 흙으로 인간을 지으신 것은, 인간은 서로 생명을 나누며 살아야 할 존재임을 의미한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믿음의 멘토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을 보면, 나도 저 분처럼 믿음생활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 전도사 사역을 하면서, 아이들을 대할 때 늘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회 회장할 때 저를 지도해주신 전도님입니다. 그분은 지금 목사님이 되셔서 목회하고 계십니다. 저는 무슨 사역을 할 때나 어떠한 문제가 놓여있을 때 그 목사님이 어떻게 하셨는가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목사님이 무의식중에 제 믿음의 멘토가 된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늘 행복해보이셨습니다. 찬양선교단을 이끌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 시골교회를 다니는데도 늘 웃으시면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웃으면서 사역하는 것 같습니다.

별로 동의를 안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여기 모인 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신다면, 여러분들을 보는 수많은 믿지 않은 분들도 교회에 오고싶어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모습 속에서 행복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예수님을 나눠주는 생명의 멘토가 되십시오. 믿지 않는 분들이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살아보십시오. 생명되신 예수님을 많은 분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흙의 두 번째 특성은 사랑이다.

흙은 무한한 포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내버리는 온갖 쓰레기와 오물을 전혀 마다 않고 모조리 품습니다. 흙은 그 무엇이든 구별하지 않고 모두 포용함으로 도리어 세상을 정화시켜줍니다. 흙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를 구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랑인 흙으로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은, 인간은 모두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이 사랑은 동정이 아닙니다. 동정은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데 비해 사랑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온 선한 사마리아인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단순히 강도당한 사람에게 즉각 자비를 베풀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나을 때까지 돌보아 주는 그 마음에 있습니.

누가복음 1033~35절 말씀 찾아서 읽겠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이튿날에도 그의 마음이 변치 않았고, 돌아올 때 돌보아준 비용을 자신이 갚아주겠다고 말합니다.

참된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안산 붕어빵 장사 이야기.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마땅히 사람중의 사람이라 불릴 것입니다.

 

3. 흙의 세 번째 특성은 정직이다.

흙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을 행하거나 속이지 않는다. 콩을 심은 데서는 반드시 콩을 내어 주고, 팥을 심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팥으로 되돌려 줍니다.

흙은 변함없는 정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정직인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사람은 마땅히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옛날 어느 왕이 신하에게 준 화분 이야기.

 

그대가 만약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함을 잊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대야말로 진정한 사람이다.”

사람 뿐만이 아니라 짐승도 흙으로 지음받았다.

단 한가지 차이 점이 있다.

 

창세기 27절을 읽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는 것만으로 그치셨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인간에게는 특별히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이것이 사람과 짐승의 근본적인 차이다.

따라서 인간이 생령으로서의 본질, 다시 말해 영적인 면을 상실한다면 그는 더 이상 짐승과 구별될 수 없다. 짐승 같은 인간, 혹은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란 바로 여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대가 어떤 장소 어떤 처지에서나 영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대는 정녕생령임에 틀림없다.

 

전도서 3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고대 인류의 발자취를 보면, 태초부터 동굴벽에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인간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평생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 생령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태도가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삶의 태도는 나 자신에게는 냉철하게,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따뜻하게를 외친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얼마나 냉철하게 자기비판을 하고 있는가, 얼마나 남을 더 따뜻하게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혹시 그 반대이지는 않는가?

우리스스로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자기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평가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마태복음 232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주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했던 회칠한 무덤처럼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겉은 아름답고, 깨끗해보이나 속은 무덤과 같은 죽음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은 그럴싸해보이지만, 속은 비어있는 삶! 회칠한 무덤!

정말 천사같은 아기들을 보면서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소유욕이 강해서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뺏으려 하면 얼마나 난폭해지고, 울어버리는 지 모릅니다. 아무런 죄도 없을 것 같은 아기도 그러한 소유욕을 가지고 부모를 때리고, 울고 불고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다.

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하타아나 헬라어 하마르티아는 모두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궁수가 쏜 화살아 과녁에서 벗어났다면 그것은 결과요, 원인은 과녁을 향한 궁수의 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살인이나 강도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범죄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결과로 나타난 것뿐이요. 죄는 인간중심의 조준이 과녁을 벗어난 것입니다. 인간의 중심이 겨냥해야할 과녁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죄란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과녁 삼아야 할 믿음의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야 할 순종의 자리를 이탈하는 것입니다.

 

라는 존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허망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해야할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추하기 짝이 없는 나의 모든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내게 십자가의 구원과 복음의 말씀을 주시고, 성령님께서 당신의 빛으로 함께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의인이라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인 됨을 통감하는 자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