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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교리공부]기독교 교리의 정의

기독교 교리의 정의

 

 기독교 교리는 하나님을 향한 기독교 교회의 응답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특별히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향해 열려있는 일련의 놀라운 가능성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노력들이다. 이후에는 교리가 단지 ‘기독교적 가르침들’이라는 말로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교리에는 4가지 주요 목적이 있다. 

① 일상의 일들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기 위해

②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응답하기 위해 

③ 인간 실존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변형 시키기 위해

④ 기독교인들에게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공동체로서,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번 강의에서는 교리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일상의 일들: 교리와 서술

 기독교 교리는 삶의 현실을 해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교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는 우리가 그 진실에 참여함과 동시에 그 진실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교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기독교적 삶의 기초들의 신뢰성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교회가 히틀러 치하의 독일처럼 하나님에 대한 충실한 순종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교회의 생명과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교리는 우리가 순종해야할 분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교리는 시대의 억압에 순응하는 거짓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스스로를 드러내신 하나님께 순종하고 신뢰하는 참된 교회 사이에 뚜렷한 선을 그어준다. 

 교리는 교회가 이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내용을 제시하고 그 중요성을 더해준다. 교리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교회는 위험스럽게도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되며, 단순히  세상이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에 빠져들게 된다. 교회의 정책이 세상에 의해 결정되고, 그 전제들이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교회의 모습이 세상의 모습을 반영하게 된다. 

 교리는 사상이다. 그러나 사상이 전부는 아니다. 교리는 이 세상과, 그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이다. 

 교리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행위에 대한 인간의 지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사색적인 추측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다. 

 기독교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생각과 말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교리는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드러낸다. 교리가 담고 있는 것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증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고, 하나님은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 인간은 누구인지에 대한 비기독교인들의 이해가 약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교회의 열정적 헌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교리는 세상에 심판자로 맞서 있고, 세상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교리는 진리를 요구한다. 근본적인 기독교 신념은 교리가 사건의 순서나, 일상의 일들에 대해 의미 있고, 정당한 진술을 주장한다. 따라서 교리를 ‘진리’로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근본적인 기독교 신념에 올바르게 주목하는 것이다. 

 교리는 기독교인들이 참되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또한 기독교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 진리를 믿을 수 있도록 초대한다. 

 기독교 교리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요소들에 접근할 수 있을까?

 

2. 하나님을 향한 응답: 교리와 계시

 기독교 신앙과 교리는 모두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다.  기독교 신학과 영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절정에 이른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구유이다’(마틴 루터). 루터는 이와 같은 말을 가지고 성경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왜냐하면 성경 이외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 다가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신약에서 예수를 부른 호칭들, 가령 ‘구원자’, ‘메시아’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이 된다. 그러므로 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응답임을 강조하는 것은 구약성경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구약성경에 의해 확정된 하나님의 활동과 그의 성실하심의 형태에 의지하여 그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증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은 기독교 신앙과 믿음의 핵심적 토대가 된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에 대한 주요 내용의 체계적 제시는 성경의 훌륭한 안내자이다. 칼빈에 의하면, 교리란 성경을 올바르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안경과 같다. 

 교리는 성경적 진술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하나님, 예수 그리고 인간에 관해서 성경이 단언한 것들의 변화무쌍한 여러 가지 관점들을 하나로 모은다. 교리는 풍부한 성경적 진술들과 예화의 기초가 되는 공통적인 형태들을 구분한다. 교리는 이러한 진술들의 핵심을 가능한 간결하고 명확한 본문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므로 교리는 성경의 요약이다. 

 교리는 마치 안경처럼, 성경 본문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가 혹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하도록 한다. 교리는 언제나 성경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교리가 성경의 주인이라기보다는 성경의 하인이다. 교리는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립되거나 폐기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교리적 진술보다 선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리가 형성되고 비평받기 때문이다. 

 

3. 교리와 성경 이야기

 교리와 성경의 관계를 논의할 때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 곧 성경 스토리가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 둘째는 어떻게 성경이야기가 교리로 바뀔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첫 번째 물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기독교 교회를 통해 권위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고 또한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기독교인들의 자기 이해를 지배하면서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예수님에 관한 교리의 권위는 바로 우리의 기독교 윤리를 결정하게 된다. 예수의 삶을 통해 우리는 모든 신자들의 목표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충실하고 순종적인 응답의 형태를 보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물음에서 어떻게 성경 이야기가 교리로 바뀔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성경 이야기도 예외일 수 없다. 교리는 성경 이야기를 읽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제시한다. 교리는 기독교 공동체에게 적합한 성경 이야기의 해석과 그 범위를 확정한다. 또한 교리는 성경을 읽는 방식이다. 본문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가 좀 더 분명하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하면 교리와 성경 이야기는 역동적 관계이다. 교리와 성경 사이에는 상호작용에 따른 피드백 과정이 존재한다. 

   

4. 지성과 감성: 교리와 경험

 기독교는 주관적인 점과 객관적인 점 간의 올바른 조화를 제시한다. 주관적인 점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수한 감정적인 신앙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은 신앙의 객관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보완되어야만 한다.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앙은 그저 믿음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요소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적이고 추상적인 분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 안에서 그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이다. 또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경험이 없는 교리는 단지 죽은 문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만일 누군가 자신의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은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이해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교리에 대한 지적인 사색이다. 그가 이러한 지적인 믿음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참된 신앙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오직 자신의 삶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독교 신앙은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여전히 ‘예수는 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과 같은 명제들로 요약되어야 한다. 신앙은 머리와 가슴 양쪽을 모두 포함한다. 

 교리는 경험을 말하고 해석한다. 즉, 교리는 감정이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에 초점을 두고 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C.S 루이스는 인간의 감정 안에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괴로운 갈망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육체적 혹은 유한한 사물이나 사람에 의해 충족될 수 없는 무한한 갈망, 즐겁고도 괴로운 갈망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데 유일하게 하나님은 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시편 42편 1-2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히포의 어거스틴은 ‘오 하나님, 당신은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쉴 그날까지 쉴 수없습니다’고 고백했다. 파스칼은 “인간의 가슴에는 다만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교리는 우리의 감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것들의 모순된 점을 지적함으로써 우리의 감정을 해석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다는 점과, 부활의 희망에 대한 현실성을 강조한다. 이같이 교리는 우리에게 경험의 모순된 요소를 알게 하는 틀을 제공한다. 

 

5. 신앙과 소속감: 교리와 기독교 정체성

 교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존재하도록 교회를 돕는다. 

1)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이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가치관들(정의, 사랑, 평화)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름으로서 생겨난다. 교리는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교회는 교리를 통해 그 자신의 소명과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변함 없이 충실할 수 있다. 

 교리는 교회나 성도들이 복음을 모호하게 일반화시키거나, 또는 복음의 독특한 시각과 하나님이 주신 이 세계와의 관련성을 상실할 때 그들을 비판한다. 

교리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희망과 믿음(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의 경험과 새로운 삶)을 반영하는 ‘내적인’현상이다. 

 교리는 공동체들에게 헌신의 의미를 부여한다. 교리는 또한 공동체의 공통된 생각들이 진리에 대한 각 개인의 인식에 대해 구속력을 행사하고자 할 때, 공동체를 대표해서 말함으로써 복종의 의미를 부여한다.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과 연관된 공동체의 축적된 지혜를 전달하는 활동적인 과정이다. 그러므로 교리는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권위있는 가르침들이다. 

2) 교리와 기독교 정체성

 ① 초대교회

 초대교회는 유대교에 대항하여 자신을 정의해야만 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기독교는 유대교의 범주 안에서 생겨났다. 기독교가 어떻게 중요한 구약성경 전통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유대교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바울의 칭의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교리는 결론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이 할례를 행해야만 하거나, 유대교 율법을 따라야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하신 위대한 약속들이 지금 기독교 신자들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사도행전 15장에 나온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생각해보라.  

 2세기 동안에 있었던 영지주의 이단신앙은 기독교 내의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왔고, 초대교회로 하여금 사도들에 의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변증하게 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리용의 이레네우스(Irenaeus, 130-200)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공적인 지식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적 가르침을 요약한 신앙문을 작성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 한 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자신의 피조물을 향한 넘치는 사랑 때문에, 처녀의 몸으로부터 출생을 감내하셨고, 그 자체로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존귀의 높임을 받으시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심판하는 심판자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다.”

 이러한 신앙문은 사도신경의 원형이 되었고, 영지주의자들과 기독교인을 구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로마제국과 멀리 떨어져 지리적으로 고립된 기독교 교회들 간의 일체감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교회가 이 세상 여러 곳에 널리 퍼져 있지만, 교회는 성경을 통해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한 공통된 교리들을 나눈다. 

② 중세의 기독교 제국

 로마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A.D. 313년 기독교가 국교화 되면서 초대교회는 중세 기독교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와 더불어 교리는 정체성을 제공하는 기능을 상실했고, 교회와 사회는 거의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이단과의 투쟁이라는 특별한 영역에서의 쓰임을 제외하면 말이다. 

 종교개혁의 발단은 이러한 교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터가 강조했던 이신칭의에 대한 교리적 혼동과 현실은 당시의 교회가 참된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공로사상과 면죄부 판매, 교황과 같은 사람에 대한 신격화 등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③ 독일의 종교개혁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에서의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한 사건을 통해 종교개혁이 촉발되었다. 루터와 그의 동료들은 이신칭의 교리에 기초하여 교황과 중세 기독교제국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개신교 진영 내에서도 대부분의 교리에 관해서는 일치를 봤는데 성찬론을 가지고 츠빙글리와 루터가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후에는 루터와 칼빈은 예정론을 가지고 서로 견해를 달리하며 서로가 구별되게 되었다. 이러한 교리적인 차이를 가지고 종교개혁은 루터파와 칼빈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차이들은 고통스럽다. 기독교인들 간에 의견이 다를 때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중심적인 내용에는 일치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차이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하나님은 천국에 갔을 때 그 사람이 장로교인인지, 감리교인인지, 성결교인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인지를 중요하게 여기실 것이다. 

④ 교리의 위계질서

첫 번째, 기독교 정체성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본질적인 교리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하나님의 현존, 이신칭의 교리, 성령의 신성, 삼위일체론

두 번째 2차적인 교리들

- 성찬식에 그리스도의 임재방식에 관한 문제들, 칭의의 개념문제, 예정론 문제

 

 교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존재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교리는 부분적으로 외적으로는 변호하는 형식을 띄기도 하지만, 내적으로는 신앙의 생명력을 유지하게 한다. 기독교 복음이 위협받을 때, 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중심으로 믿음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교리인 것이다. 

 

6. 생각해봅시다.

1) 기독교교리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해보고 적어봅시다.

 

2) 지금 이 시대에 교리교육에 대한 현실은 어떠한가? 이제 자신의 신앙을 교리적으로 세워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나의 주관적인 신앙체험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