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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부활과 용서(요한복음 20장)

부활과 용서

요한복음 2019- 23절 말씀

 

신영복 교수가 쓴 나무야 나무야란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산의 주체지만, 동물은 소비의 주체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은 소비의 주체 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수천년 동안 식물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자원과 자연을 사람은 단 몇 십년 만에 소비해버리는 것을 봤을 때 소비의 왕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쓰는 종이와 물품들을 대기 위해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의 수많은 나무들이 날마다 소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나무가 없으면 자연히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양이 줄어들 것이고, 그 영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러한 순환은 나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 되돌아 보게 합니다. 나무가 죽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꿈을 심고, 산에는 나무를 심고, 사회에는 사람을 심자!”

사람에게는 꿈을 심고, 산에는 나무를 심고, 사회에는 사람을 심자!”

꿈을 심고, 나무를 심고, 사람을 심는 삶을 통해 이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지길 소망합니다.

한 살림 운동을 주장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이 쌀 한톨에 우주가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이 쌀 한톨을 위해 일년동안 수고한 농부의 땀과 노력이 베어 있구요. 땅의 영양분과 하늘의 비, 물의 생명력이 있어야지 이 쌀 한톨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쌀 한톨을 보니까 그냥 쌀 한톨이 아니더라구요. 이 안에 우주가 들어있더라구요. 하나님이 주신 신비가 이 쌀 한톨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시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농부이신 하나님이 쌀 한톨 한톨과 같은 우리 사람을 낳기 위해... 열매 맺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쏟으셨을 지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 이 세상에 태어난 저와 여러분이 쌀 한 톨 한톨 처럼 밥이 되어 이웃을 먹이고 세상을 살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식구는 먹이식에 입구를 써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을 말합니다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온 식구가 한 밥상에 모여서 밥을 먹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요즘 문화와 생활방식이 그렇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부터라도 일주일에 한번만큼은 꼭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날을 정해서 삶도 나누고 신앙도 나누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입니다.

우리 19~20절 말씀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날 저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한 집에 다 모여 있는데 그들은 너무 두려웠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자기들을 죽일 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들을 닫고서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저 문을 열고 자신들을 잡으러 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집의 모든 문을 걸어잠그듯이 그들의 마음의 문까지도 닫고 살아갑니다. 아무도 못들어오게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그렇게 어두운 밤을 보냅니다. 어두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 때에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마디가 바로 이말이었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봤을 때 제자들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기뻤을까요?? 아니면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때문에 마음이 찔렸을까요??

오늘 20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기뻐했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자신이 주라는 것을 알려줬을 때 제자들이 기뻐했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을 보면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화가 나지 않았을까요?!

기적을 베풀고 사람들을 고쳐줄 때는 그렇게 자신의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잡히고 나니까 제 살길 찾아 도망간 제자들을 보고 화가 나진 않았을까요?!

그렇게 도망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마냥 기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쁜 마음과 함께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신들의 모습 때문에 마음 한켠이 찔렸을 것입니다.

그 부활의 주님이 지금 우리에게 오신다면 여러분은 기쁨으로 맞이하실 수 있습니까?

온전히 기뻐하며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절기이지만, 한 편으로 그 주님을 맞이할 때 주님을 부인하는 모습이 아닌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배신과 분노에 나무라며 화를 내신게 아니라 제자들을 생각하며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축복해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의 주님을 맞이하므로 참 평강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 21절부터 23절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21절부터 23절까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서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낸 것처럼 제자들을 보내니 너희도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으로 보냅니다.

문을 닫아 걸어잠그고 살지말고, 문을 열고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명령하십니다. 남이 오지 못하게 벽을 쌓지 말고, 용기있게 저 문을 열고 나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죽인 악독한 저 유대인들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라고...

성령을 받고 자신을 죄인 취급했던 저 원수들의 죄를 용서해주는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용서의 삶"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고 이야기하신 내용의 핵심은 용서입니다.

23절을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너희가 누구의 잘못을 용서해주면 너희의 잘못도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구의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고 있으면 너희의 잘못도 그대로 있으리라.”

마태복음 1821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합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만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잘못을 하곤 합니다. 때로는 말로서, 때로는 행동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못을 하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잘못할 때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내 마음 속에는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자리가, 환경이 그렇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십시오.

사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 영문도 모른채 자신의 오른뺨을 때리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냅다 달려들어 그 사람의 뺨을 때릴 것입니다. 누가 자신을 뒤에서 비난하고 욕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방송에다 대고 그 사람을 비난하고 욕할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용서했는가에 따라 하느님은 당신을 용서할 것이다.”

이 말은 사실 마태복음 1836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

마음으로부터 용서함을 통해 하나님께 칭찬받고 우리의 잘못까지도 용서받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상처입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말 때문에 상처받고, 가족들 때문에 상처받고, 세상살이 때문에 상처받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는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러한 상처의 가장 좋은 치료약은 용서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용서한다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상처도 깨끗하게 치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를 위한 일입니다.

용서를 통해 상대방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를 통해 우리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하신 것처럼.. 용서하신 것처럼..

자신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부활절을 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단순히 2000년 전의 부활절을 기념하는 것이 부활절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부활이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문을 닫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 주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을 협박하고 죽이려던 자들에게 담대히 나아가 복음을 선포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박해하던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진정한 용서함을 통해 부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용서의 삶과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에 문을 걸어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을 보내주시어 평강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진정 용서 받기보다는 용서함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신 그 길을 걷게 하시고, 내 자신이 소중하듯 내 이웃도 소중함을 깨닫는 지혜를 주옵소서.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에도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서로를 높여주고 존중해 줄줄 아는 마음을 주옵소서. 육신의 약함으로 고통받는 성도들 있습니다. 주님께서 치유의 손을 펼치사 친히 안수하여 주셔서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