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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차이의 정치와 정의(서평)

차이의 정치와 정의

 아이리스 영은 현 시대의 정의관이 분배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새롭게 역량 증진적 정의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역량 증진적 정의관에서 말하는 부정의는 기본적으로 억압지배라는 제약 형식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억압개념을 인종이나 성, 동성애, 연령차별주의로 나누어 억압의 범주를 다원화 해왔는데  결국에는 억압 받는 집단에 대한 헛된 논쟁으로 귀결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억압에 대한 모습을 사회 집단 별로 다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다섯 가지 억압의 측면 착취, 주변화, 무력함, 문화제국주의, 폭력 을 고려할 때 더 객관적으로 사람들의 개별적 형태, 지위관계, 분배 상태, 기타 문화적 산물들을 실제 관찰하고 평가할 뿐만 아니라 상이한 집단들의 억압 상태에 유사한 점들과 중첩되는 점들까지도 수용하고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구조적 개념으로서의 억압, 사회집단의 개념을 다루어서 기존에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개념을 다룬 이후 지금의 미국 사회 자체가 모든 개인들이 다양한 집단 소속감을 가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들에 존재하는 특권 및 억압의 문화와 관점과 관계는 서로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존에 가지고 있는 억압에 관한 개념으로는 지금의 억압받고 있는 현실과 착취당하는 이들, 주변인, 무력한 비전문적 노동자들, 문화제국주의에 억압 당하는 집단, 체계적 폭력 앞에 노출된 많은 여성과 흑인과 소수자들의 부정의한 모습을 담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은 서로 중첩되고, 유사한 것들을 포괄적으로 그려내고 정의할 수 있기에 개인과 집단이 억압 받고 있는지 그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리스 영의 이 억압에 대한 다섯 가지 측면은 개인과 집단의 억압 받고 있는 지의 여부를 판별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받고 있는 구조적인 억압에 대해서 깨닫게 하고,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고 미국사회가 열광하고 전세계인들이 주목한 것은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착취와 억압당하면서도 기생하며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이란 도구를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 집단, 가정, 교회를 들여다 본다면 얼마나 많은 억압의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날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쩌면 사회보다 더 폐쇄적이고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무엇보다 주변화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주변인에 속한 것이 노인과 청년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 복지 수급자가 되어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며 살아야 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인구고령화 현상을 겪게 될 아니 이미 겪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주변인을 남모를 억압이 아닌 주인공으로 존중 받고 대접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도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건물의 모퉁이돌로 쓰셨듯이 억압받는 이들, 버려진 이들에게서 쓸모를 찾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 참된 정의를 세우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으로 억압받던 이스라엘을 불러 참 자유인으로 해방시키시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참된 정의를 세우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종, 주님의 제자로서 이러한 정의를 이 땅에 이루고 실천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교회 안에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을 더 관심 갖고 위로하고 돌아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