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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공정한 환대(서평)

공정한 환대’ 

 

공정한 환대란 제목보다 부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 낯선 이들을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의 환영을 보면서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가 환대의 삶을 몸소 보여주었기에 말에도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환대를 실천하는 것은 내가 살고 일하는 곳에서 각 기관들의 외부자들의 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찾는다는 것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 그룹이 모였을 때 조차도 누가 빠졌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주시하고자 했던 그 모습 속에서 변두리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교인수가 늘어나고, 재정이 늘면 그래도 교회 사역을 잘 하고 있구나 착각에 빠진 목회자들에게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포함되기 전까지는 기독교의 교회라는 몸은 여전히 망가진 채로 있는 것이다라는 일침을 날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만 크게 짓고,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이 세상의 낯선 자들에게 환대를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소명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저자는 우리는 탈식민주의적이 되기를 원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형태의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합니다. 식민주의적 인식의 틀이 아직도 우리 안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예수님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려볼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파란색 눈을 가진 백인남성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은 전형적인 중동의 구릿빛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영어를 잘하고 백인이면 그 사람의 인격과 상관없이 존대하고, 동남아 사람이라면 우선 무시하고 보는 것이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제국주의적인 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도 모르게 서구적인 문화는 우월하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탈식민시대의 주역들은 다름 아닌 식민을 한 자나 식민을 당한 자, 그리고 식민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는 우리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실을 인식했다면 이제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신학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와 삶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공정한 환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탈식민시대의 신학적 관점들로는 차이, 환대, 공동체의 해방 성격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들입니다. 차이는 때로 남을 배제하고 업신여기는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양성의 가치를 제공하기에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기독교 전통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의 무지개의 다양성을 존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전통과 조금만 다르면 정죄하고, 폄하하고, 수군 수군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독교 안에 개방성과 포용성이 포함된 환대의 신학전통이 다시금 세워질 수 있다면, 교회는 발전할 것이고, 창조적 다양성과 함께 선교적 지평이 넓어질 것입니다.

 래티교수는 환대의 해석학을 탈식민주의적 사고의 통찰을 세우는데 사용하면 선택의 교리는 외부자들을 포함하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환영을 개방하는 것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선택이 특권이 될 때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차별하고 억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기에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도 타자는 없다는 점을 늘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환영은 그런 점에서 모든 특권의식과 식민주의적 문화, 도구들을 내려놓고, 둥근 식탁 안에서 쟁취와 우월보다는 나눔과 섬김의 자리로, ‘타자에서 동역자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눈 정원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말로는 낮은 자들을 향한 섬김과 나눔을 이야기하지만, 교회 중심부에 있는 중직자들 위주의 목회와 대접받고 섬김 받는데 너무 익숙해져버린 현실을 돌아볼 때 환대의 신학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주입된 식민주의의 영향력 아래 차이가 아닌 차별을, 선택 받은 자로서의 섬김이 아닌 특권을,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편견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질문 1. 주변인(위안부)을 위한다고 하면서 주변인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사건, 목회자의 세속화 문제)

 

질문 2. 목회자로서 차별과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변두리는 어디이고,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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