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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훈련

상호의존성(서평)

상호의존성’ 

 

상호의존성을 읽으면서 말 그대로 포스트식민주의 여성주의 실천신학을 삶 속에서 풀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차사고와 금요일 공동체 만찬, 실제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을 실 사례로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냥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너머라는 말 자체가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희망적인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각 장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너머 실천까지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1장 독립성 너머에서는 온전한 자기란 공동체의 지원과 다양하게 얽히며 위치 지워지는 관계성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독립성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는 독립한다는 것은 성인이 되는 것이고, 자유를 얻는 것이라는 생각했는데, 자기만의 강하고 능력 있는 삶만을 추구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회적 취약계층(어린이, 장애인)을 구분하고 의존적인 존재는 부족한 존재요, 내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이들로 치부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회학습에서 어른이 되기를 강요 받는 아이가 있고, 성적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참 위로가 되는 것은 성장은 성취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상실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서 탈학습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얻기 위해 잃어야 한다.’ 말입니다. 이기적인 자아로부터의 독립, 성공주의와 결과주의로부터의 독립, 죄와 편견과 억압으로부터의 독립을 얻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고, 클레어몬트 신학교 세미나처럼 새로운 만남과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처럼 독립성이라는 겉모습 아래,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공동체와 사회의 책임을 져버리지 않고, 보다 공평한 상호의존적 사회를 창조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을 보면서 한 단어가 생각이 났는데 그것은 이었습니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서로 기대어 사는 존재이기에 이라는 한자가 이런 모양이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책 65페이지에 인간-사이라는 뜻으로 관계성을 풀어 설명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상호의존성을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히 타자를 인식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권력의 격차와 계급, 불평등, 부정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주변화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장 성인 중심의 예배 너머에서는 지금 개신교 주류 주일학교 예배가 어른과 어린이를 분리해서 연령별로 드려지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예배의 다섯 가지 신학적 기초(의례, 계시, 응답, 관계성, 리허설)를 검토해봄으로써 어른위주의 예배가 아닌 어린이와 소수자들의 은사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단순히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참여자로서 존중 받아야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찾아서>란 책에 보면 김포에 있는 주님의 보배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온 세대가 함께 드리는 세대통합예배를 통해 믿음의 전수를 꿈꾸며 실천하는 교회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박신웅박사(고신 총회교육원 원장)는 세대통합예배를 평가하면서 기독교교육과의 연관성 속에서 4가지 관점을 제시 했다고 합니다. ‘주일학교 중심 교육에서 가정과 함께하는 신앙교육으로, 핵가족의 부모-자녀의 가정 개념을 넘어 3세대의 세대통합관점으로, 분절화된 신앙경험을 공동의 의식으로, 형식적 학습을 넘어 비형식적인 학습의 장으로.’ 사실 지금 청년부를 맡아서 사역하고 있는데 청년부와 장년부 예배 형식 자체가 다릅니다. 청년부는 찬양으로 시작하는 열린예배이고, 장년부는 경건을 중시하는 전통예배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첫 주는 청년부도 장년예배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장년부는 경배와 찬양예배를 한 달에 1번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 건축을 하더라도 장년예배 중심으로 짓게 되고, 좋은 위치는 성인 중심으로 선정되기 마련이지만, 미래의 중심은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녀/청소년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고, 온전한 예배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청소녀라는 단어였습니다. 지금까지 청소년, 청년은 들어봤지만, ‘청소녀라는 말은 처음 들었고, 또 내 자신이 너무 당연하게 남성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6장 인간-중심주의 너머에서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만연해온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검토, 인간과 비-인간 종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실천들, 그리고 생태학과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신학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모든 원인은 인간-중심주의 때문이란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좀 더 들어가보면 서구 유럽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기계적인 관점으로 자연과 여성에 대한 지배와 식민지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1:23)는 말씀에 대한 해석은 동물-인간- 하나님의 관계성 보다는 지배와 억압의 대상으로만 해석되어 온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볼 때 인간과 비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아인슈타인도 벌들이 사라지면 인류의 생명은 4년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모든 피조물이 상호의존적인 존재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멸종되어가는 종들도 수백에 이르고, 트럼프로 인한 자국우선주의, 코로나 시대에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감안했을 때 모든 피조물을 포함한 타자를 아끼고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 모퉁이에 쓰레기 봉지를 휙 던져놓고 가는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 문 앞에 놓으면 지저분하니까 여기 건물 모퉁이에 던져놓고 간다고..’ 태평양 어딘 가에는 쓰레기가 모여 섬을 이루고 있다는데 상호의존성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볼 때는 어둠 뿐인 것 같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보다는 다시 전쟁으로 가는 것 같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종식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영상으로 드리고, 멀찍이 마스크를 쓴 채 떨어져서 앉기에 성도의 친밀한 교제도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신용복 교수님이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여름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옆에 함께 예배 드리는 성도를 조심 해야 하고, 길거리에 마스크 쓰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이를 향해 불편한 시선을 던지게 되는 이 현실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속에 나온 너머라는 말은 다시금 희망을 노래하게 만듭니다. “독립성이라고 포장된 깡패를 너머, 다수자인 성인들 중심의 예배를 너머, 인간 중심주의가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너머 상호의존성이 지향하는 생명 살림의 지구공동체를 이루는 그 날이 오리라.”

 

질문 1. 주변인(위안부)을 위한다고 하면서 주변인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사건, 목회자의 세속화 문제)

질문 2. 왜 성인예배 중심이 아닌 전 세대가 함께 공동체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온 세대가 함께 드리는 세대통합예배를 통해 얻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질문 3. 생태 환경의 상호의존성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현실(가정,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운동)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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