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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잠언 6장 1~11절(지혜를 얻으라)

잠언 6장 1~11절(지혜를 얻으라)

오늘 말씀은 <지혜를 얻으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실 잠언 6장 전체를 보면, 하지 말아야 할 훈계와 명령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담보, 보증 서지 마라! / 입의 말로 책잡히지 마라 / 게으름 피우지 마라 /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하지 마라!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 망령된 증인.. / 여자 조심해라!

우리가 살면서 조심해야할 것들, 정말 실제적인 교훈들을 담고 있는 말씀이 잠언 6장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들만 조심하면서 산다면, 인생 성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관계를 위한 실제적인 분별력!(1~5)

1절부터 나오는 말씀을 보면 단순히 담보 잡히지 말고, 보증서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관계를 잘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무턱대고 지키지도 못할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장 쉽게 깨뜨리는 것이 바로 돈문제입니다. 아무리 친하고 좋은 사이라도 둘 사이에 금전거래가 있게 되면, 십중팔구는 문제가 생깁니다. 안생길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은 약속을 하지 마라가 아닙니다.

기꺼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부적절하고 무모한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보증을 서준다면 여러분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그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것 까지도 염두에 두고 보증을 서라는 말입니다.

관계를 지키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실제적인 이러한 일상에서 일어난 문제들 속에서도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친구도 잃지 않고,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꼭 지킬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십시오. 행동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말은 하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잘못된 행동이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내 아들아부르면서 자식에게 알려주듯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알려주십시오. 보증 한 번 잘못 섰다가 인생이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지혜로운 아들, 지혜로운 자녀로 설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미에게 배우라... 배우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다...(6~11)

파우스트를 쓴 독일의 괴테는 유능한 사람은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격언입니다. 뭔가를 이루었다고 해서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배우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장공 김재준목사님도 좌우명 중에 하나가 평생 학도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수요, 학장이요, 박사요, 그 어려운 시절 유학도 갔다온 사람이지만, 평생 배우는 학생처럼 산다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가 늘 배우는 유능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곤충이 있습니다. 바로 개미입니다. 개미가 큰 가요? 작은 가요? 작습니다. 개미에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디테일한 것들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생활하면서 다들 큰 것만 보기가 쉽습니다. 개미를 보려면 고개를 숙여서 유심히 봐야 합니다. 작고 섬세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도 디자인에 관해서 얼마나 디테일한 것들을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디자이너가 작업을 해서 갖고 오면, 딱 봐서 맘에 안들면, 그 작품을 쓰레기라고 불렀습니다. 디자이너는 겉에 보이는 것만 멋지게 디자인해왔는데 스티브 잡스는 안에 있는 디테일한 것까지 신경써서 디자인하라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 패션계의 제왕 조르지오 아르마니라고 아십니까? 아르마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뭔가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디테일에 신경 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뭔가 비범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집요할 정도로 가장 작은 디테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나는 매번 1센티미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전한다

1센티미터 앞서기 위해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개미에게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작은 일에 민감하고, 디테일한 것까지 볼 수 있습니다. 개미에게 배우려고 기꺼이 허리를 숙이고 눈을 바닥가까이 까지 낮추는 사람입니다. 유명한 곤충기를 쓴 파브르는 제일 중요한 것이 관찰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눈과 귀 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곤충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놀렸겠지만, 파브르는 현대인들에게도 회자되는 위인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눈에 잘 보이고 큼직한 일은 누구나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작은 일은 누가 나서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눈여겨 보십니다. 순종하는 오벳에돔을 눈여겨 보십니다. 모세의 시종에 불과한 여호수아를 눈여겨 보십니다. 이새의 아들 중 가장 어리고 아들로서 인정받지도 못한 다윗을 눈여겨 보십니다. 우리도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미에게 배우는 지혜가 또 있습니다. 우리 6절부터~ 9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요? “게으른 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요?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라는 책에 보면, 나태, 즉 게으름에 관해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게으름, 나태는 단순히 몸이 느슨하고 느린 상태가 아니라, 영혼이 병든 것처럼 의욕과 활력을 잃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아무리 찬양해도 기쁨이 없고,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없고,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게으름은 행하는 죄가 아니라 행하지 않는 죄입니다.

예전에 사막 수도사들은 이러한 게으름과 나태를 경계했습니다. 삶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질 때 아무도 모르게 게으름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자신이 게으르다고 여기신 분들이 있다면, 깨달으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입니다. 믿음의 진보를 얻고 싶다면, 영적으로 더 성숙하고 싶다면, 개미처럼 열심히 믿으십시오. 부지런히 신앙생활 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하는데요. 잘 사는 방법은 알고 보면 참 쉽습니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살면 됩니다. 개미는 여름동안에 열심히 먹을 것을 예비해서 추운 겨울을 납니다. 게으른 사람은 꿈도 못꿀 일입니다.

 

잠언 222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개미처럼 자기 일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개미에 관해서 연구한 것들을 보면요. 정말 개미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울대 최재천교수가 추천한 책인 <개미세계여행>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현재 지구상의 개미는 수만종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알려진 것만 9500종이 있습니다. 개미는 약 1억년 전 공룡들이 사는 시기에 태어나 전세계에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지렁이보다 더 흙이 살아나고, 지구생태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극단적으로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인간이 죽으면 지구가 살아남지만, 개미가 죽으면 지구는 살아남지 못한다.

개미학자들이 개미들에게 발견하고 있는 중요한 한 가지는 개미가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미도 종류가 참 많은데 보통 왕개미, 군대개미, 일개미로 나눠집니다.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한 무리의 군체,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여왕개미는 일생동안 15000만 마리의 일개미를 낳습니다. 그 중에 함께 살아 있는 수는 200~300만 마리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개미별로 사역이 분담되어 있습니다. 땅파는 개미, 먹이 가져오는 개미, 순찰자 개미, 애벌레를 양육하는 개미 그리고, 마치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순간 순간 필요하면 서로 사역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전체 작업 능률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개미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부지런함,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성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가 맡은 일도 부지런히 해야 하지만, 어느 누가 힘들면 서로 교대해서 도와주는 이러한 사회성이 필요합니다. 개미가 1억년 전부터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협동성, 돕고 돕는 것이 자기가 살아남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대청교회에도 이러한 사회성, 협동성,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랄려면요. 나 혼자 잘믿어서는 오래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의 가족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더 자랄 수 있습니다. 나의 순이 부흥해야 합니다. 나의 신도회가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개미들처럼 조직화 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과 각 직분과 은사대로 맡겨진 사역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미사회와 다른 점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대청교회가 진정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섬김과 낮아짐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의인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오히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복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를 고치시고 씻기길 원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개미처럼 부지런히 신앙생활하시고, 맡은 일 감당하시면서 내일을 준비하십시오. 어려울 때일수록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시오.

오늘 말씀은 게으른 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날마다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게으름 피우며 사는 분이 있다면, 개미에게 배우셔서 작은 일에도 우리의 눈을 돌리고,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