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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지식] 포도나무

[성경지식] 포도나무

1. 유대인의 결혼풍습과 포도주

성서시대 유대인들의 결혼 문화를 보면, 한 총각이 처녀를 보고 마음에 들면 그는 아버지를 졸라서 잔치 비용을 타 낸다. 총각은 이 돈을 가지고 처녀의 집에 가서 잔치를 벌인다. 이 때 처녀의 가족과 친구와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성대한 잔치가 일주일 동안 열리낟. 함께 먹고 자고 마시는 잔치에서 처녀는 총각을 유심히 살필 것이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 총각은 처녀 앞에 포도주를 놓는다. 이 때 처녀가 그 포도주를 마시면 총각을 남편으로 맞이하겠다는 결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시지 않으면 총각은 잔치 비용만 날리고 풀이 죽은 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녀가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 총각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아버지 집으로 간다. 신부와 함께 살 처소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다. 신부는 처소를 예비하러 간 신랑이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일정 기간 떨어져 사는 정혼 기간이 있었다. 보통 1년 정도였는데, 이 기간 동안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지만 육체적으로는 처녀와 총각이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던 순간도 요셉과 정혼한 때였다. 마리아는 법적으로 요셉의 아내였지만, 육체적으로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였던 것이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알고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기적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최후의 만찬의 포도주(십자가의 보혈)로 사역을 마무리하시며,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명쾌하게 보일 것이다. 천주교 성당에서 사제를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로 살겠다는 것이다. 

2. 기쁨과 축복을 상징하는 포도주

물이 귀한 광야의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술이 아닌 음료수였고, 그것도 생명을 살리는 음료수였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는 8,9월 무렵이다. 이 때는 햇빛이 가장 강렬하게 내리 쬐는 한여름으로 숨쉬기 조차 힘든 계절이다. 이런 계절에 청포도가 영글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포도를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부르곤 했다. 

광야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꿀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물이었다. 그들은 생명과도 같은 물이 바닥날 즈음에, 정확히 때를 맞춰 회색빛 광야를 뒤로한 채 한껏 영근 청포도를 따서 포도주 틀에서 밟았다. 이것은 곧 포도주로 탄생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자연스럽게 해갈의 기쁨을 상징하게 되었다. 

유다를 향한 야곱의 축복, 즉 포도주로 옷을 빨고 그 눈이 포도주로 인해 붉겠다는 표현은 유다 자손에게 임할 '넘치는 축복'을 뜻하는 것이었다. 

3.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킨다?

"소경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낙타)는 삼키는도다" (마태복음 23:24)

위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생활문화 속에서 포도와 관련된 성경 말씀 중 하나다. 포도주 틀은 포도를 밟는 곳과 포도즙이 흘러내리는 곳으로 나뉜다. 두 공간 사이에는 조그만 도랑이 있는데, 세마포 천으로 막혀 있다. 이곳을 세마포 천으로 막은 이유는 포도를 밟다가 밟히지 않은 포도 알이 밑으로 굴러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세마포 천은 좁은 구멍이 많은 천이기 때문에 그 사이로 포도즙 원액은 내려갈 수 있지만 밟히지 않은 포도 알은 내려갈 수 없다. 

보통 포도주 틀은 야외에 있다. 야외에서 포도를 밟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8월의 더운 햇빛 때문에 포도주가 빨리 발효되기 때문이다. 둘째, 발효 냄새를 빨리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포도를 밟다보니 파리나 벌이나 개미 같은 곤충이 포도듭 속에 들어가는 문제가 생겼다. 레위기의 정결법에 따르면 이러한 곤충은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 포도즙 원액은 항아리에 모아 웅덩이 같은 지하 저장소에 저장한다. 이 때 항아리 위에 세마포 천을 깔아서 곤충을 걸러내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잔치에 초대받아 포도주를 접대받을 때 이를 그냥 마시지 않았다. 이들은 휴대용 세마포 천을 주머니에 갖고 다니면서, 연회장이 포도주를 따라 줄 때 자신의 포도주 잔 위에 세마포 천을 깔고 혹시 있을지 모를 부정한 곤충을 다시 한 번 걸러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지적한 것이다. 레위기 법에 따르면 하루살이와 약대(낙타)는 모두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분에 넘치게 주의를 해서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조그만 하루살이를 걸러 낸다 해도, 거대한 낙타를 꿀껏 삼켜 버린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무슨 영적 유익이 있겠는가?

이는 바리새인만이 아닌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크리스천도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꿀껏 삼키는,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인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4. 한국교회에서 술마시면 범죄자인가?

마지막으로 "교회다니면서 술마시면 죄를 짓는 건가요?" 라는 질문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사실 술 마시는 게 죄는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 사실 유럽에서 와인을 제조하는 곳이 수도원이었다. 교회에 가도 와인 저장고가 있을 정도다. 천주교 성당을 다니는 이들을 봐도 술담배는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런데 왜 개신교 교회는 술마시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정죄하기 까지 할까? 

그것은 한국 초기 선교사들의 가르침에 있다. 처음 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하는데 음주가무에 탁월한 민족이었던 우리 조상들이 평소에는 신실하게 잘 믿다가도 술만 먹으면 변신(?)을 하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고주망태 죽자고 마시는 그 문화를 고치기 위해서는 술을 금하고, 술마시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술고래가 되어 실수하는 것이 덕이 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데도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국에 한 번 나가보면 알 것이다. 외국사람중에 술 안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그러한 술에 대한 가르침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덕이 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건강을 위해서는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고 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물로 바꾼 것이 아니라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 여기에는 분명한 문화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에 덕이 되지 않는다면, 누군가를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다면 술을 마시지 않거나 자제하는 것이 좋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적에 아이들에게 술문화를 가르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에 술을 마시게 하면, 술이 쓰고 맛이 없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가 술에 대해서 적당히 마시게 하는 교육을 은연 중에 시키는 것이다. 무턱대고 금지한다고 아이들이 술을 안마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술먹지말라고 무조건 강요하기보도 스스로가 술의 해악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좀 더 성숙한 신앙을 갖는다면, 술먹는 것을 가지고 누군가를 정죄하기 보다,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더 신실하게 나아가고자 애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고, 용서해주고 관용할 때 믿음은 더 성숙하는 법이다. 오늘도 누군가를 비난하고 판단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보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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