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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들

삶을 바꾼 만남 (정민 교수)

삶을 바꾼 만남(정민 교수)

인생에서 정말 귀한 만남이 있다. 강진으로 귀향 간 다산 정약용과 제자 황상이다. 다산계를 맺을 정도로 둘의 관계는 각별했고, 후손들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강진에서 별볼일 없이 살던 황상이란 소년이 정약용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

황상은 후에 추사 김정희에게도 인정받을 정도의 글을 쓰는 이가 되었다.

인생에서 이런 귀한 만남을 갖게 된다면, 부지런하게 그 만남을 가꿀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유배지에 머물던 정약용은 마을 사람들의 청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황상이 서당에 나와 글을 배운지 일주일 째 되던 날, 정약용은 황상을 따로 남겨, 공부할 것을 권하며 문사를 부지런히 갈고 닦아 큰 사람이 되라고 일렀다. 산석(황상의 아명)은 머뭇거리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째로 머리가 둔하고, 둘 째로 앞 뒤가 꼭 막혔으며, 셋 째로 이해력이 부족하여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정약용이 답했다.

"배우는 사람들에겐 세 가지 큰 병통이 있는데, 너는 한 가지도 갖고 있지 않구나. 한 번만 보고도 척척 외우는 사람들은 외우는 재주만 믿고 그 뜻을 음미하지 않아 소홀한게 폐단이다. 제목만 주면 날래게 글을 지어내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경박하고 들뜨게 된다. 깨달음이 재빠르면 처음 깨친 것으로 대충 넘기고 곱씹지 않으니 배움이 거칠고 투철하지 못하다. 그러니 공부는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 어렵지만, 계속 파고들어 결국 한 번만 구멍이 뚫리면 절대 막히는 법이 없다. 앞 뒤가 막혔다고 했지? 꽉 막혔던 것이 뚫리면 더 이상 막힐 것이 없다. 장마철에 막힌 봇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한 곳에서 빙빙 돌지만, 막혔던 봇물이 터지고 나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닦고 또 닦아내면 마침내 튀어나왔던 것들은 반질반질해지고 광채가 날게다.

그렇다면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려면?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너는 평생 '부지런함' 이란 글자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부지런할 수 있을까? 네 마음을 다잡아서 딴 데로 달아나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야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황상은 자신을 인정해준 스승의 격려에 감격하여,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이 가르침을 '삼근계'라 부르며 소중히 간직하였고, 평생을 돌처럼 지키고 강물이 바다를 향하듯 따랐다

 - 삶을 바꾼 만남 책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