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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들

빌립보서 4장 8~9절 설교(너희는 행하라)

* 성경봉독 : 빌립보서 48~9

너희는.. 행하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오늘 말씀은 너희는, 행하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나누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글 자체의 의미보다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잘 됐으면 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 애절한 마음..

바울의 서신서를 읽다 보면, 그 성도들을 향한 편지 글 너머에 바울의 의도가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성장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질책도 하고, 때로는 감사도 하고, 칭찬도 하지만, 끊임없이 권면하고 가르치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님 믿고 살아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라.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명령하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그 마음 중심에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리숙한 신앙에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교사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고 받아줍니다. 하지만 위대한 교사는 아이들이 도전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어줍니다.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라는 책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좋은 것은 큰 것, 거대하고 위대한 것의 적이다...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개의 경우 좋은 삶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회사들은 위대해지지 않는다. 바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제법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주된 문제점이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교사입니다. 말씀을 통해 도전받게 만들고 가슴이 뜨거워지게 만듭니다. 동기 부여를 해주고, 우리가 믿음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생각하며 타협하기 마련입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가장 위대한 교사를 한 분 보내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의 태어남을 보십시오. 가장 고귀한 분이 가장 지저분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분의 소년시절은 배움과 질문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고, 묵상하고, 일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삼십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이루셨습니다.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말씀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말씀대로 한 줄기 빛이 되셨고, 말씀대로 어린양이 되어 엄청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소외당한 자들의 이웃이 되어주었습니다. 머리둘 곳 없이 약한 자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고, 광야에서 배고픈 이들을 먹이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처럼 원수들을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 평강으로 축복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그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줄 믿습니다. 주변에 배울만한 분들이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와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것은 참고하는 것에 불과합니다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 삼아서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8절 말씀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제 정말 끝으로 하는 말이라면 얼마나 귀한 말일까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긴다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일까요? 우리가 이 말씀에 귀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무엇에든지... (8)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사도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을만하며 칭찬받을만한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무엇에든지.. 사람을 만나든지, 청소를 하든지, 밥을 먹든지, 일을 하든지, 참되게, 경건하게.. 옳게.. 정결하게.. 사랑받을만하게.. 칭찬받을만하게.. 덕이 있게..

가끔 보면 뭘해도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실수해도 잘못해도 뭘 깨뜨려도.. 우리가 실제로 실수하면 화부터 냅니까? 그럴 수도 있지 격려합니까?

한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구요. 목회를 하면서 전도사때는 모르니까 하면서 배운다고 하지만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는 실수하면 안된다. 성도들도 전도사 때는 받아줘도 목사안수를 딱 받으면 대하는 게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사람은 사실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전도사는 사람이고, 목사는 사람도 아닙니까? 심지어는 그런 이야기도 합니다. 목사는 아파도 안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는데 왜 고난을 주실까? 막 고민하는 거에요.

목사는 뭐든지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찬양도 잘해야 되고, 기도도 잘해야 되고, 말씀도 좋아야 하고, 인물도 반반해야 하고, 성품도 좋아야 하고..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설교할 때도 말 더듬고 어눌해요. 얼굴도 우락부락하게 생겼습니다. 성격은 고집스럽기도 합니다. 뭐 은사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성도들에게 인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참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혼자 묵묵히 기도하고 우직하게 기도하는데 꾸밈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권사님들이 같이 기도하는 거에요. 다른 목사님들은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지만, 행동이 가볍고 들뜹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참 입도 무겁고 뭔가 범접하지 못하는 듬직한 영성이 있습니다.

목사든 전도사든..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될 줄 믿습니다. 기타도 못치고, 찬양도 못하고, 말씀도 그냥 혼잣말 하더라도.. 하나님 사랑하는 그 마음.. 그 믿음이 가장 귀하잖아요. 여러 가지 다 잘하는 사람 치고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일에 수십년 정진한 그 사람이 대가가 되고, 장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바라보며 신실하게 살아갈 때 참되고 경건하고 정결하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장인들이 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너희는 행하라.(9)

두 번째는 9절 말씀인데요.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성경을 읽다 보면 꼭 단서가 붙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하면..입니다. 조건문인데요이러한 원리를 잘 보여주는 계명이 성경에 나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20:12)”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3:17)

우리 주님이 산상수훈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후에 이런 말씀을 마지막에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1:25)

행할 때 받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하는 그 사람만 알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 당시에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큰 결례였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이 결국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합니다. 하인들이 아귀까지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인들은 연회장에게 갖다줍니다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포도주 맛을 본 연회장은 맛있다고 이야기하며 어디서 났냐고 묻습니다. 실제로 맛을 본 사람은 연회장이지만,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누굴까요? 물을 떠다 준 하인들입니다하인들만 아는 그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바울이 가르쳤기에 배울 수 있었고, 바울이 주었기에 받을 수 있었고, 바울이 말했기에 들을 수 있었고, 바울이 실제로 보여줬기에 빌립보교인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잘 배울 수 있는 것은 실제로 가르쳐보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리에서 서로 가르치십시오. 서로 주십시오. 서로 말하십시오. 서로 정말 예수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십시오. 그게 먼저입니다. 빌립보교인들이 있기 전에 바울의 이러한 제자훈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빌립보교인들이 해야할 일은 바로 복음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테네의 한 극장에서 기념공연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노인이 뒤늦게 극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초만원이라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두리번 거리고 있는 노인을 본 여러 사람이 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수군거리며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자기 자리를 양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외국인 석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스파르타인들이 벌떡 일어나 서로 자기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이 때 노인이 말합니다.

아테네인도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 선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여! 할렐루야!를 외쳐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테네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평강의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으냐? 그러면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선을 행하는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고민하는 동안 시기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순종은 즉시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아들은 누구입니까? 아버지가 시킨대로 하겠다고 대답하고 하지 않은 아들과, 아버지 앞에서는 싫다고 하면서도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아들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