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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

[하루를 여는 시] 눈뜨는 새벽 (도종환 시인)

눈뜨는 새벽 (도종환 시인)

 

밤새 울던 벌레도 뜰 아래 눕고

아직 아무것도 눈뜨지 않은 고요한 새벽입니다. 

저도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을 오래도록 꿈꾸어왔습니다. 

 

첫닭이 울고 새들이 때묻지 않은 울음을

하늘 한쪽에 축복처럼 뿌리며

우리들의 영혼이 먼저 깨어

어지러운 꿈을 차곡차곡 개어두고

세상 욕심도 눈뜨지 아니하여

순결한 기도가 숨결처럼 몸에 스미는

그런 아침 같은 세상을 꿈꾸며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빼앗기고 짓밝히고 몸을 묶이어

세상 한 귀퉁이를 잘라 지은 감옥에 갇히어도

용서가 받아들여지고

사랑이 받아들여지는

모두들 제 욕심에 불타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이보다 더 오랜 세월을 저는 이 험한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피 터지게 소리치고 목숨에 불을 뿌려도

자기 자신을 향해서 외에는 마음을 열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울음과 웃음을 꾸밈없이 나누는 세상을 그리며

길고도 오랜 세월의 한 중간쯤에

지금은 잠시 감옥에 있습니다.